박은경 충북도 양성평등가족정책관 주무관

▲ 박은경 충북도 양성평등가족정책관 주무관

아이유, 박보검이라는 스타 배우의 출연으로 방영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뜨거운 흥행을 일으키며 막을 내렸다. 감동적인 이야기와 깊이 있는 메시지는 수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고, 삶을 돌아보게 하며 인생드라마라는 타이틀을 얻기에 충분했다. 극 중 박보검이 연기한 ‘관식’은 무쇠같으면서도 순애보적인 남성상을 상징하며, 그의 이름은 어느새 대중문화 속 고유명사처럼 사용될 만큼 드라마의 열풍은 대단했다.
제주도 방언으로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의미를 가진 이 드라마는 3대(광례-애순-금명)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통해 가족애와 시대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우리 사회가 점차 양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따뜻하고 진정성 있게 보여준다.
첫 번째 세대인 애순의 어머니 ‘광례’는 해녀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숨을 한 번 깊이 들이쉰 뒤,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누구보다 오래 물질을 하며 맨 마지막으로 나올만큼 억척스러운 삶을 살며 자식을 키워냈다. 여성의 노동이 가족의 생계를 지탱했지만, 그 희생은 존중보다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광례의 삶은 바로 그 시대 수많은 여성의 현실이었다.
두 번째 세대인 ‘애순’은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품었던 세대였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녀는 사랑하는 관식과 야반도주를 감행했지만, 사회는 냉정했다. 같은 행동을 했음에도 애순은 퇴학당하고, 관식은 정학에 그쳤다. 여성에게는 늘 더 무거운 책임과 사회적 잣대가 따랐다. 삶의 선택지도 한정적이었다. 결혼하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공순이’가 되는 길뿐이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세 번째 세대인 애순의 딸 ‘금명’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성장했다. 시댁 식구들은 어린 금명을 해녀로 키워 살림밑천으로 삼고자 했지만 애순과 관식은 이에 저항했고 금명이 공부를 통해 스스로 선택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수 있도록 키워냈다. 긴 시간 동안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을 강요받던 여성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이름으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드라마는 이처럼 세대를 거듭할수록 여성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작은 일상을 통해 보여준다. 광례 세대가 묵묵히 삶을 견뎠다면, 애순 세대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으며, 금명 세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변화는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의 작은 결심과 조용한 저항들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이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우리 부모 세대인 ‘애순과 관식’이 있었다. 그들은 사회적 통념을 깨고 딸에게 자전거를 타게 했고, 집까지 팔아가며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또한 남녀가 함께 밥상에 앉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절 시대의 관습을 거스르고 겸상을 실천했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가난과 차별이라는 삶의 무게를 견디며 자식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 부모의 간절함이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기회, 평등은 저 먼 시간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있기까지 묵묵히 길을 내준 모든 부모님과 이전 세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모두, 폭싹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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