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탁 소설가

최탁 소설가
▲최탁 소설가

유춘기라는 새 단어를 알려준 사람은 딸이다. 딸은 아들 둘을 키우며 육아 휴직 중이다. 유춘기는 4~7세 유아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언어가 익숙해지면서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부모에게 강하게 반발한다. 딸은 자신이 사춘기일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어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럴 때마다 늘 설명을 해줘야 하니 어린아이들에겐 피곤한 일이다.” 부모가 상상하는 화면에 아이를 강제로 넣는 건 아이의 꿈을 지워나가는 과정일 수 있다. 반면에 아이만 편한 화면으로 부모가 성큼 들어가면 아이가 길을 잃는 순간 부모도 길을 잃는다.

직장에서 선배들에게 자주 들은 조언이 있다. “숫자가 인격이다. 회사에서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싶다면 숫자를 지켜라.” 어른들은 늘 숫자에 집착하고 아이들은 늘 장미와 여우를 상상하니 접점을 만들기 어렵다. 누가 옳은지, 어떤 길이 맞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유춘기가 시작된 큰손자는 만 4살인데 공룡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있다. 집에는 공룡 책과 장난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 소중한 공룡 친구들과 헤어져 유치원에 가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딸과 손자의 아침은 매번 힘들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난 움직일 수가 없었지.”로 시작하는 박진영의 ‘허니’라는 노래가 히트하던 해 딸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학교의 장기 자랑 대회를 위해 담임 선생님은 뭐든 한 가지씩 준비해 오라고 하셨다. 아내의 친구 동생이 이웃에 살았는데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그래서 딸에게 ‘허니’에 맞춰 안무를 짜줬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창적이고 귀여운 안무였다. 그 춤을 본 딸의 반 친구들은 난리가 났다. 딸은 반 친구들과 단체로 춤을 춰 장기 자랑에서 대상을 탔다.

한동안 딸은 학교에서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렸고 우리 부부는 친척들이 모일 때마다 딸에게 무대를 마련해주며 기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춤추는 딸의 표정에서 수줍음이 아니라 우울함을 발견했다. 딸은 즐겁지 않았지만, 부모의 자랑을 위해 춤을 췄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딸에게서 ‘허니’는 멀어졌다.

며칠 전 딸이 초등학교 시절의 다른 기억을 내게 말했다. 죽음이 무서웠다고, 너무 무서워 잠들기 전에 오들오들 떨기도 했다고. 그런 마음을 어느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아빠에게 말했는데 아빠가 “아빠도 무서워. 가족과도 헤어지고. 그래서 오늘 하루가 소중한 거지. 아껴 써야 하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죽음의 공포와 멀어졌다고.

“난 언젠가, 해가 지는 것을 하루에 마흔네 번이나 보았어.” 어린 왕자가 한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지금 마흔네 번이 머리에 들어왔을까, 아니면 누군가와 같이 보았던 어떤 날의 석양을 추억했을까. 내가 어른인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리트머스다. 그러나 정말 대단한 어른은 리트머스가 변색 돼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아이가 상상하는 화면을 볼 수 있는 부모가 곁에 있다면, 그 아이는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걷는 도중에 몇 번 어긋나고 쓰러진다고 해도 결국 자기가 꿈꾸는 곳에 가닿는다. 길이 만족스럽다면 중요한 건 목적지가 아니라 길 자체니까. 숫자로 치장한 목적지는 좌표에 묶여 있는 하나의 고정된 점이지만, 아이가 꿈꾸는 곳은 그 길에서 매일 만나는 행복이니까.

건강가정기본법에서 지정한 가정의 달은 5월이지만, 응당 우리에게는 열두 달이 모두 가정의 달이다. 다시 지친 딸을 바라본다. 언제까지나 나의 어린아이인.
                                                                                    - 26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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