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네거티브와 선동으로 얼룩졌던 제21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오늘로 막을 내린다. 1990년대식 음모론이 되살아났고, 혐오와 조롱이 정상적인 언어처럼 유통됐으며, 급기야 한국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논의도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공허하고 혼탁한 선거의 와중에 정작 유권자들이 마음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이념과 정파, 정책과 공약, 검증과 의혹이 범람했지만, 정작 선택의 기준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듯한 공약’보다는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 보이는 선거다. 찍어주고 싶지만 도덕성이 걸려 망설이고,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 후보를 택하게 되는, 여전히 비호감의 기로에 선 유권자들이 많다.

3차례의 TV토론은 공방과 말싸움에 가까웠고, 지상파와 종편을 통틀어 시청률은 20%를 넘지 못했다. 2017년의 30%에 육박했던 수치와 비교하면, 국민의 관심은 확연히 식은 것이다. 어쩌면 이미 마음을 정했거나, 굳이 토론을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이들이 많았는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피로사회에 지친 국민들의 시험대다. 표를 주고 싶은 설렘보다, 표를 주지 않기 위한 분노가 더 크다. 그런 시대, 정치에 이런 기준이 필요하다. 누가 사람을 존중하는가. 누가 말을 아끼고, 경청할 줄 아는가. 누가 타인을 비난하기보다 품을 줄 아는가.

우리는 작년 ‘계엄사태’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충격 속에서도 다행히 우리는 법치의 가드레일을 넘지 않았고, 파국을 가까스로 피했다. 이제는 회복의 시간이다. 거창한 대담론이나 성장주의의 허상을 버리고, 국가는 포용적이며 절제력이 있어야 하고, 정치는 겸손해져야 한다. 지금은 민생의 언어로 다시 말할 시간이다. 일상의 균열을 메우고, 불안에 떨고 있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정치를 회복해야 할 때다. 정책의 거대성보다 작은 희망을 복원하는 능력, 말의 세기보다 경청의 깊이, 성장의 수치보다 존중의 태도가 더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후보들은 또다시 어깨에 힘을 주고 세상을 바꿀 팔자라도 타고난 듯 큰 소리를 치고 있다. 반도체 선진국, AI 중심국가, 글로벌 허브를 말하지만, 이 거대한 언어 뒤에 구체성과 실행력은 보이지 않는다. 거듭된 정권의 실패는 바로 이 ‘거창함’에서 비롯됐다. 차라리 목표를 낮추고,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인재를 골고루 쓰겠다고 말하는 지도자가 더 신뢰를 준다. 사법권력을 거느린 최고 엘리트들이 나라를 어떻게 망쳐왔는지는 이미 우리가 목격한 바다. 명문대 출신과 스펙의 정치는 이제 신뢰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나르시시즘에 취해 변덕을 부리는 리더가 아니라, 말을 아끼고 함께 고통을 나눌 줄 아는 리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외쳤지만, 그 ‘다름’이란 무엇이었는가. 지금의 경제 상황은 차기 대통령에게도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최소 1~2년은 저성장의 늪을 피할 수 없고, 대외 변수는 불확실성을 더할 것이다. 이때 정치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정답을 아는 척 떠들기보다, 정답을 함께 찾아가는 공동체의 길을 여는 일이다.

그러니 선거 하루 전,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그는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가?”, “그는 들을 줄 아는가?”, “그는 자신을 낮추고 국민과 함께 고통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존중과 경청은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이 기준만큼은,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한다. 국민이 어떤 기대를 품고 투표했는가에 따라 정치는 그 얼굴을 바꾼다. 우리가 자극과 혐오에 휘둘려 표를 던지면, 정치는 그만큼 날카롭고 잔인해진다. 그러나 우리가 절제와 품격을 기준 삼는다면, 언젠가는 정치도 제 얼굴을 되찾을 것이다. 그것이 이 거친 선거의 끝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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