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설희 시인, 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 출간

 

올해 첫물이에요

비닐봉지에 꽁꽁 싸맨

감자 몇 알과 상추를 내민다

까맣게 그을린 손등과 얼굴로

 

비닐봉지를 푸는데

씨를 뿌리며 흥얼거린 노랫소리 들린다

잎과 줄기가 피어나리라는 부푼 가슴,

긴 열기 견디고 스며드는 어스름이 고여 있다

 

울컥,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첫물의 시간들

 

풋내나는 걸음걸이

두근거리는 심장

시디시어 입에 침이 고이는

떫고 까끌거리는

첫 입학, 첫사랑, 첫 키스, 첫 월급, 첫 출산

첫 죽음까지

­첫물부분

 

박설희 시인
박설희 시인

 

박설희 시인의 시집 우리 집에 놀러 와가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1부 다 되어가, 2부 지구를 굴린다, 3부 환희, 4부 초대 등 총 57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그의 시편들은 삶과 죽음, 사랑과 상처, 역사와 노동, 공동체와 자연을 넘나드는 입체적 시선으로 현대인의 깊은 내면을 어루만진다. 독자들은 이 시집을 통해 일상적 경험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존재의 의미, 사회적 상처와 치유의 가능성, 자연과 생명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의 독특한 이미지와 언어 실험, 그리고 공감과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진솔한 메시지는 각계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임동확 시인은 박설희 시인의 시적 태반은 단연 진창으로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서 떨어져 헛돌고 있는 바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도랑과 같은 속수무책의 망연자실한 현실을 의미한다진창길을 헤쳐 가는 눈의 부족의 노래라고 소개한다.

올해로 등단 23년 차를 맞으며 네 번째 시집을 출간한 박설희 시인의 시세계는, 현실과 사물들을 통하여 세상사의 신산함을 말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존중하고 위무(慰撫)하는 정신의 깊이와 함께 언사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설희 시인은 강원 속초에서 태어나 2003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 『가슴을 재다, 산문집 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등이 있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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