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시인, 시집 『고독의 두께』 출간
높은 곳에 올라
구멍 뚫린 가슴으로
종일 무얼 기다리고 있어
제 몸을 때린 소리가
멀리멀리 그곳에 갔다가
무얼 데리고 오는지
그래서 종은
시선이 아주 먼 곳
지평선에 머물러 있어
힘들어도
계속 확인을 하지
종은 언제나
소리로 자신을 세탁하니까
- 「종소리를 멀리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전문
거짓도 가끔은
너의 글 안에서 진실이라는 말로 가면의 피를 흘린다
알몸 같은 내 푸른 글아
눈부신 껍질이 흐득흐득 나를 찾을 때까지
제발 나를 따라오지 마라
- 「끈질긴 고백」 부분
김유진 시인의 시집 『고독의 두께』가 도서출판 상상인에서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1부 하늘이 이유 없이 비스듬히 내게로 왔다, 2부 파도가 하얀 치아로 종탑에 앉아, 3부 지상의 모든 밤은 블랙홀이 되어, 4부 당신의 詩는 완성되지 않았나요로 구성됐다.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감정, 즉 ‘고독’을 무게도 길이도 아닌, ‘두께’라는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단위로 측정하려는 시적 시도를 하고 있는 이 시집에서 고독은 단순히 외로움이나 결핍의 정서가 아니라, 한 존재에게 서서히 침윤해 들어오는 감각이며, 내면의 지층을 형성하는 정서적 퇴적물이다.
또 이 시집에 실린 많은 시들은 상실의 슬픔이라는 정서를 바탕에 두고 있다. 「비문의 풍경」에서 “사람과 사랑 사이가 멀어”진 이후, 풍경은 물웅덩이처럼 고여 있으며, “늙은 고양이”와 “태양의 총”이라는 이질적 이미지가 뒤섞이며 죽음과 소멸의 비가시적 징후가 풍경 속에 스며든다.
김유진 시의 가장 두드러지는 미학은 침묵을 견디며 말하는 태도이다. 이 시집 『고독의 두께』는 한 인간이 어떻게 침묵과 정적 속에서 내면을 길어 올리고, 그 안에 담긴 부재, 애도, 회한, 기도의 결을 시로 직조하는지 보여준다.
김유진 시인은 강원 강릉 출생으로 2006년 문예춘추로 등단했다.
2009년 한전아트센터 초대작가, 2022년, 2025년 강원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 2020년~2025년 원주문화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4회)을 받았다. 2023년 강원문학 작가상, 원주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거울의 시간 고독의 두께 외 6권이 있다.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