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순 동화작가

▲김송순 동화작가
▲김송순 동화작가

중환자실에서 이틀 밤 지낸 남편이 ‘중증집중치료실’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무척 반가웠다. 환자의 건강이 많이 호전되었다는 말 같아서였다. 더구나 그곳에서는 보호자가 옆에 있을 수 있고 환자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4인용 중증집중치료실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중환자실에서 올라온 환자들을 좀 더 지켜보기 위해 마련한 병실이라더니 간호사들이 자주 다녀갔고, 그곳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무척 아픈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중에서 어떤 할아버지는 특히 더 그랬다.
아주 연로하신 그 할아버지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지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그리고 말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목에서는 계속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간병인께서 기구를 이용하여 가래를 빼주면 잠시 조용해지다가도, 또다시 가릉 거리는 소리가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

중증집중치료실에 올라온 몇 시간은 남편을 챙기느라 어떤 것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가래 끓는 소리에 밤새 잠을 설치고 나니,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이해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다독여 봤지만,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같은 병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은 그곳에서 한밤만 지내고는 일반병실로 옮겨가는데 남편한테만 옮기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자꾸 걱정되며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아침밥을 먹고 점심, 저녁밥을 먹었다. 계속 약을 먹고 혈압을 재며, 피 검사를 하고 CT를 찍어야 하는 남편도, 그 할아버지의 가릉 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또 밤이 왔고, 우리는 밤새 잠을 설쳤다.

두 밤을 그렇게 힘들게 지내고 나니까,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내 가슴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진 온 의사 선생님께 불쑥 말해버렸다.

“선생님, 병실 좀 옮겨 주세요! 더는 견딜 수 없어요! 너무 힘들어요!”
나는 말하면서 얼굴이 달아오르고, 움켜쥔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투는 참으로 사무적이었다.

“병원에서는 서로 이해를 해야지요. 그걸 이해 못 하면 안 되지요.”
나를 바라보는 그분의 눈빛은, ‘당신은 참 이기적인 사람이네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의사 선생님은 한마디 더 하고는 다른 환자 있는 쪽으로 가 버렸다.

“환자는 이곳에 더 있어야 해요. 몸 상태가 나아지면 일반병실로 옮길 거예요.”
나는 그 말까지 마저 듣고는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할아버지의 고통을 생각하면 나는 분명히 이기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왠지 억울하고 속상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언제 왔는지 병실 한편에서 젊은 여자의 애달픈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제 오전에 잠깐 다녀간 할아버지의 딸이 또 다니러 온 것 같았다. 그 딸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식들을 유학까지 보내준 훌륭한 분인데 이렇게 건강이 나빠졌다며 한참을 울다 갔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히기 위해 휴게실로 들어가는데 할아버지 옆을 밤새워 지킨 간병인 아주머니가 소파 위에 힘없이 누워있는 게 보였다. 밤새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한강’ 작가가 쓴 시 ‘조용한 날들’에 쓰여있던 시 한 구절이 내 가슴속에 화살처럼 꽂혔다.

오래 때가 묻은 / 손가락 두 마디만 한 / 아직 다 둥글어지지 않은 돌 // 
좋겠다 너는, / 생명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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