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 교수

▲ 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 교수

202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5.5%인 782만 9000가구에 이른다. 이 중 70세 이상 노인이 19.1%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60대 이상에서 독거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은 고령화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닌, 생활 방식과 돌봄 철학의 전면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에는 ‘부모님의 노후는 가족이 돌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의 도덕적 합의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10년 전 31.7%에 달하던 이 견해는, 이제 18.2%로 급감했다. 노인의 노후는 이제 개별 가족이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이자 공동 과제가 되었다.
실제로 통계청의 2024년 사회조사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구의 78.8%는 자녀와의 동거를 원하지 않지만, 동시에 간병, 가사, 건강관리 등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바란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돌봄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원하지만, 현실의 요양시설은 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요양원 등 시설에 대한 선호도는 충격적일 정도로 낮다. 유료 및 무료 요양원을 노후 거처로 선택한 비율은 각각 1.6%, 2.8%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없고, 식사 시간도 정해져 있으며, 자유로운 개인 일정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시설의 일방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등 노년의 삶이 감금처럼 제한되고 있다는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 평생 살아온 자신의 라이프스타일대로 삶의 마지막을 나답게 마무리하고픈 소망이 과연 사치스러운 노욕일까.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시설 확충이 아니라, ‘삶의 철학’을 담은 돌봄의 공간이다. 요양시설은 ‘삶의 끝을 기다리는 수용소’가 아니라, ‘삶의 연장선상에서 존엄을 지켜내는 집’이어야 한다. 이 점이 바로 필자가 고민하는 부분이고 출발점이다. 이를 기본으로 한 다음과 같은 복지정책의 고도화가 지금이라도 준비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지역밀착형 커뮤니티 요양시설을 조성해야 한다. 거대한 집단 수용시설이 아니라, 주거와 커뮤니티가 결합된 소규모 생활 단위의 ‘복합 돌봄 마을’ 형태가 필요하다. 고령자가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노후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특히 반려동물과의 동반 입소, 가족 및 지인의 자유로운 방문이 가능하도록 시설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 ‘집처럼 머물 수 있는 요양시설’을 만들기 위한 건축 규제 완화와 운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둘째, 자율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생활 중심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 개인의 기상, 식사, 여가 일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맞춤형 일상 설계’를 도입해야 한다. 반려동물 돌봄, 개인 정원 가꾸기, 독서 모임, 음악 감상, 디지털 기기 활용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러한 선택권이 시설 운영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 ‘삶의 만족도’는 선택의 자유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재가복지와 시설복지 간의 유연한 연계망을 구축해야 한다. 하루 또는 반일 단위의 요양시설 이용, 방문 간병, 가정 내 스마트 돌봄 시스템을 포함한 복지 바우처 패키지를 확장해야 한다. 이렇게 중간 단계의 돌봄 수요에 대응하면서도 고령자가 익숙한 생활 환경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넷째, 요양시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요양시설은 고립의 상징이 아니라, 존엄한 노년을 위한 ‘동반자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품격 있는 요양생활’의 모범 사례를 적극 발굴·홍보하고, 사회적 캠페인을 병행해야 한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미래지만, 고립과 감금은 피할 수 있는 선택이다. 노년의 삶은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시간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아가는 존엄의 시간이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요양시설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품격과 인간에 대한 존중의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요양시설은 삶을 마감하는 곳이 아니라, 남은 삶을 ‘나답게’ 지켜내는 자유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돌봄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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