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첫째,“학문만년(學問萬年),문향만리(文香萬里)다”. 삼경사서를 읽으면 고향 뒷동산의 산신령은 된다. 김노규(1845~1904)는 〈심지자계(心志自戒. 갑자 칠월 칠일(甲子, 1864년 七月 七日)마음의 뜻을 스스로 경계함)〉에 자신의 학문자세를 피력했다. 만(滿) 19세에 지은 시다.조기교육을 잘 받은 요즘 세대들은 더 일찍 자기인생의 목표를 확정실천하리라.
둘째, 제1수다.“왈이일서생(曰爾一書生), 이능지호학(爾能知好學). 학자장이행(學者將以行), 후각효선각(後覺效先覺).말하노니 너는 한 사람의 서생으로, 너는 잘 아는구나 배우는 것을 좋아해야한다는 걸. 학자는 장차 실행해야하는데,후각자는 선각자를 본떠야한다.”김노규는 뒤에 태어나서 깨닫는 사람은, 선각자를 본떠야한다는 학문자세를 견지했다. 선각자는 옛날의 성인이라고 강조한다.
셋째, 다음은 제2수이다. “선각하등인(先覺何等人),석성현여(古昔聖賢歟).성현구방책(聖賢具方冊),경서우자서(經書又子書).선각자는 어떤 사람인가? 옛날의 성인이니라. 성현은 네모난 책을 구하였으니,경서와 또한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지은 책이다.”경서는 삼경사서이며, 제자백가는 유가(儒家)의 경전인 삼경사서을 제외한 도가, 법가(法家), 음양오행가, 소설가(小說家)등이다.
넷째, 두만강구곡시(豆滿江九曲詩) 제3곡 〈무이상류(武夷上流) 무이의 상류〉를 보자.“今撫夷看古武夷, 斡東八九列名池[斡東地名, 昔有八池, 今則九池].孔城上里源流水[上里有孔城舊基], 喜聽朱歌畫夜斯.지금의 무이는 옛 무이를 알아볼 수 있으며. 알동에 여덟 아홉 개의 이름난 못이 있네[알동은 지명인데 예전에 여덟 개의 못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홉 개의 못이 되었다].공성윗마을 발원지에서 흘러오는 물이[윗 마을에 孔城의 옛터가 있다], 밤낮으로 이와같이 흐르니 주자의 무이도가를 기뻐하며 듣네.”
다섯째, 지금의 무이(撫夷)는 예전에는 무이(武夷)라 표기했다. 무이는 함경도 경원부에 있는 지명으로, 경흥 본진의 소속인 아오지(阿吾地)ㆍ무이(撫夷)ㆍ조산(造山) 등 3보(堡)가 있다. 알동(斡東)은 함경북도 경흥의 두만강강변을 마주 대하는 러시아령 안에 있는 지명이다. 이성계(李成桂)의 고조인 목조(穆祖) 이안사가 전주에서 삼척ㆍ의주를 거쳐 알동에 옮겨와 익조(翼祖) 때까지 살았다. 익조 때 여진족이 그를 시기하여 해치려 하므로 두만강에 있는 적도(赤島)로 피하여 난을 면했다. 뒤에 익조는 다시 덕원으로 옮겨와 살았다. 알동에는 이성계의 조상이 묻힌 2개의 능이 있었는데, 태조 때 경흥 남쪽의 능평(陵坪)으로 이장하였다가 태종 때 함흥부 달단동(韃靼洞)에 옮겨 장사하였으니, 곧 덕릉(德陵)이다. 목조가 죽자 경원(慶源)의 공성(孔城縣) 즉 공주(孔州) 곧 경흥부(慶興府) 성(城) 남쪽 5리(里)에 장사하였다.
여섯째,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알동과 공성에는 조선 이태조의 고조인 익조 이안사등 조선왕조의 조상과 관련이 있다. 자신과 나라의 뿌리를 중요시해야한다는 점을 표명했다. 두만강 주변에 무이라는 물줄기가 윗마을 공성산성에서 발원하여 주야에 쉬지 않고 흐른다. 이같이 역사와 문화가 중단없이 흘러 이어온 점을 주목했다. 김노규는 무이에서 주자가 뱃놀이하며 노래하듯이, 자신도 태평성대에 뱃놀이를 하고 싶은 열망을 담았다.
일곱째, “제4곡 건천교정(乾川交汀) 건천의 교차하는 물가모래톱”을 보자.“乾原西瞰五龍川,百里靈區毓幾賢. 交處分明丁字樣, 汀州形勝又誰傳.건원의 서쪽에 오룡천을 바라보니,백리 신령한 구역에 어진 분 몇 분을 양성했던고?교차하는 곳이 분명 정자(丁字) 모양이니, 물가모래섬의 형승 또 누가 전할꼬?”
여덟째, 경원부의 건원(乾元)이다. 1937년에도 함북 경원군 아산면 신아산동에 매월 3, 8일 (월6회) 고건원시장(古乾原市場)이 섰다.세종 22년 경신(1440) 11월 26일(을축)함길도 도관찰사ㆍ도절제사가 건원만호(乾原萬戶)의 이전 실치에 대해 건의했다. 경원 본진의 소속인 훈융(訓戎)ㆍ안원(安原)ㆍ乾原ㆍ아산(阿山)등 4보가 있다.  오룡천(五龍川)은 함북 종성군, 경원군 등지를 거쳐 두만강으로 흘러드는 66km의 하천이다.
아홉째, 김노규는 건원 땅의 고무래 정(丁)자모양의 지형과 북방 오랑캐를 방어하기 위해 만호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국경선과 국방시설의 중요성은, 잠잘 때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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