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희 화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길(My way)을 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살펴보면 누군가가 걷던 길을 자신만의 길이라 착각하며 생명을 소진 시키고 있을 수도 있다. 자신만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에겐 남다른 사명감을 수행하려는 의지가 누구보다 더 강한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질곡을 마다하지 않고 감내하려든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장자(莊子 周 BC369~289)의 유명한 비유 소요유편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가 있다. 한 번의 날갯짓으로 구만리를 날아오른다. 그래서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꿈을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 새는 바로 북해의 얼음 구덩이에 살던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변해 된 붕(鵬)이다. 하늘과 땅을 동시에 지배할 수 있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가진 새를 의미한다. 그러나 장자가 그 새를 불러온 까닭은 속세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려는 허망한 자들의 야욕을 꼬집으며 자기 수양을 독려하려는 비유다.
나는 과거에 ‘하늘을 나는 물고기(1993)’란 산문집을 낸 적이 있다. 현재 사는 집을 짓기 전손바닥 만 한 작은 마당에 2층 화실로 오르는 야외 계단이 있었는데, 그 층계 아래에 조그마한 수조를 우겨놓고 물고기 두어 마리를 길렀다. 어느 날 화실에 오르며 물고기가 궁금하여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하는 현상을 목격 했다. 그건 물고기가 구름 옆으로 나는 모습을 본 때문이었다. 물론 물고기가 하늘을 날 수는 없다. 수조에 내려앉은 하늘과 구름에 물고기가 겹쳐 보인 까닭이었지만 지극히 파격적인 장면으로 한동안 몽롱한 정신을 수습해야만 했다.
이후, 내 그림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관념을 깨는 힘은 바로 ‘하늘을 나는 물고기’가 쐐기 역할을 한 때문이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하늘을 나는 신부와 신랑의 행복감을 그려낸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 샤갈(Marc Chagall1887~1985)도 있다. 그러나 물고기가 하늘을 나는 그림을 본 적이 없었기에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 뉴밀레니움의 새천년(2000)을 맞으며 용기를 냈다. 그건 인사동의 사비나 갤러리(현재 사비나미술관)와 공평아트센터(현재 폐관됨)가 공동으로 주관하며 초대한 ‘누가 너희를 새천년에 남기랴’는 제하의 나의작품전이다. 그간 산수화에 점경처럼 그려 넣던 새를 중심으로 만들어 독립시킨 혁신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성경에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선 천국에 들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와 같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조선시대 추사(秋史 金正喜1786~1856)는 사야정신(史野精神)이라 깨달은 것이다. 추사가 쓴 ‘사야(史野/간송미술관 소장)’라는 현판글씨가 바로 그것을 증거 한다. 나도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겨우 팔순전(八旬展/2025)을 서울과 대전, 그리고 고향인 홍성에서 삼세판을 가르듯 열었을 때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내가 가는 이 길이 확실한 나만의 길이였음을 늦게나마 확인한 걸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건 화가 조지아 오키프(1887~1986)의 말처럼 그가 평생 칼 날 위에서 사는 것 같았었다고 술회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들어섰음을 깨달은 건 외롭지 않음을 느낀 때문일 것이다. 나만의 길을 가며 ‘My way'를 외칠 수 있음을 감사한다. 나도 평생 칼 날 위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