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용웅 수필가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아내가 급하게 일어선다. 텃밭의 잡초를 뽑기 위해서다.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 일해야 땀을 덜 흘린다고 한다. 어제 장터에서 구입한 제초용 갈쿠리를 비장의 무기처럼 챙겨서 들고 나간다. 나는 아직 식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따라서 엉거주춤 일어난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텃밭 일에서 벗어났다. 일하는 것도 신통치 않은데다 늦은 나이에 공부한답시고 끙끙대는 내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아내가 공부하라고 밀어내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척 물러났던 게다. 이제와서 막상 밭일을 해보니 팔순 중반의 육체가 지탱하기 어렵다. 허리와 무릎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1분을 쪼그리고 앉아 있질 못한다.
하지만 밭에서 쫓겨나 책상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었다. 책상 앞에 앉았어도 연신 창밖의 아내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엎드려 일하는 모습, 등짝에 넓게 얼룩진 러시아 땅의 땀자국을 보면서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이제 배움을 졸업했으니 아내의 수고를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처지였다.
고국에 묻히기를 결심하고 귀국해서 산천을 헤맸다. 살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은 나이가 있으니 의료 접근이 쉬운 도시를 권유했지만 나는 시골을 택했다. 기계 속에 파묻혀 보냈던 세월의 보상이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텃밭과 같이 지내면서 친해진 탓이지 싶었다. 철들기 전 충북 영동의 산골짝에서도, 부산에서도, 심지어 이민 가서도 공장 한 귀퉁이에 텃밭을 일구었다.
나는 귀국해서 시골에 집을 지으면서도 400㎡가량 되는 앞마당을 밭으로 만들었다. 이웃들이 예쁜 집에 정원을 만들어야지 웬 밭이냐고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다. 문제는 그렇게 만든 텃밭을 나 자신은 한 번도 제대로 일구고 가꾸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고구마와 고추가 주종이고 토마토, 상추, 가지, 오이 등은 우리 식탁에만 올릴 만큼 두세 포기씩 심었다.
하지만 막상 호미를 들고 텃밭을 일구다 보니 무엇보다도 끝없이 솟아 나오는 잡초와의 싸움이다. 뿌리까지 뽑아낸 잡초가 돌아서면 또 같은 자리에서 고개를 내민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흘러간 나의 이민 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잘 시작했던 양장점은 아내를 너무 힘들게 했다. 아내를 일에서 해방시키겠다고 경험과 지식도 없이 원양어업에 뛰어들었다가 비참한 결과를 만들었다. 내가 망했다는 소문과 함께 이웃이 썰물처럼 떠났다. 사업이 망한 것보다 이웃이 멀어지는 게 더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다. 결국 다른 나라로 다시 떠나야 했던 아픈 추억이 되살아난다.
처남이 부직포를 씌워 잡초를 제거하려 하지만 소용없다. 오히려 푸르름을 기대했던 정원이 부직포로 인해 검게 변했다. 허리와 무릎이 아우성이고 목은 갈증을 부른다. 아내를 불러 사정하다시피 일을 끝내자고 하소연한다.
‘텃밭 가꾸기’란 감성感性의 작업이 아니라 땀을 흘려야 하는 노동의 현장이다. ‘농부는 하늘의 언어를 땅에서 실천하고 있는 거룩한 사람이다.’ 어느 작가의 글이다. 새기고 싶은 말이지만 언감생심 어림없다.
이제 나도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내 몸을 쓸 만큼 썼다. 뒷바라지해야 할 아이들은 모두 학업을 마치고 짝을 맞아 독립해 떠났다. 늦게 시작한 나의 배움도 연 전에 졸업했다. 겨우 진입한 텃밭 농사도 아쉽지만 졸업해야겠다. 나의 농사 실력은 분명히 유급 수준이기에 나 혼자 셀프 졸업이다.
졸업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