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에서 호텔 신입사원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
리비아 내전 중 잃을 수 있었던 인생, 다시 산다 생각하고 최선 다해
호텔에도 서열 있어... 나이와 직급은 무관 “‘서 기사’라 불러주세요”
“2010~2011년 리비아(북아프리카)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군부대의 유혈 충돌로 여기저기 건물이 폭격당하고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당시 내전 상황은 그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참혹하고 혼란스러웠어요. 그런 와중에 살아남은 내 인생은 신이 주신 ‘덤’이거나 ‘선물’이기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의도적으로 기억을 끄집어내 그 기억을 디딤돌 삼아 다시 일어서곤 합니다.”
당시 리비아에 살고 있던 1500여 한국 교민들을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무사히 국내로 이송시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리비아 한국대사관 서용원 영사.
그가 지금 청주에 있다.
13일 청주시 율량동 엔포드호텔 1층 프런트에서 고객 안내를 하고 있는 서용원(65) 벨데스크를 만났다.
벨 데스크는 호텔 입구에서 고객을 환대하는 도어맨과 고객의 체크인·아웃 시 수하물 옮기는 것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직원을 말한다.
훤칠한 체격에 푸근한 듯 근엄한 표정, 몇십 년 호텔리어로 살아왔을 것 같은 연륜의 노신사는 경영진이거나 최소 지배인일 것이라는 오인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가 내민 명함에는 ‘서용원 사원’이라고 적혀 있다.
“제 업무 중에 하루 한두 번, 승무원 등 장기고객을 공항까지 픽업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동료들에게 ‘서 기사’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했지요. ‘서 사원’은 발음도 느낌도 좀 이상하잖아요?”
그랬다. 그는 지난 2월 엔포드호텔에 취업한 예순다섯 살의 4개월 차 신입사원이다.
서 씨는 1960년생 청주토박이로, 중앙초·주성중·청주고를 거쳐 충북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잠시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1993년 서른네 살 때 외교부에 들어가 중국, 리비아, 트리니다드 토바고, 브라질 등의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다 5년 전 정년퇴임하고 청주로 내려왔다.
외교관으로 28년간의 외국 생활에 지쳐 쉬고 싶어 내려온 고향이지만 평생을 일해온 전형적인 한국형 가장인 그에게는 ‘쉼’이 더 어려웠다. 이리저리 일자리를 알아보다 청주 시내 한 주간보호센터의 운전기사로 취업해 4년간 근무했다.
하지만 파트타임 일자리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8시간 정식근무 직업을 원했고 ‘시니어 우대’ 조건을 내세운 엔포드 호텔의 벨 데스크로 취직하기에 이르렀다.
영어, 중국어, 터키어 등 3개 국어가 능통한 외교관 출신에게 수백명 호텔 직원 중 가장 말단 직위가 부끄러울 수도 있고 수두룩한 ‘젊은 상사’가 불편할 법도 하지만 그는 “나이와 직급은 하등 관계가 없다. 연장자일지라도 그 분야에 경력이 적은 사람이 하급자인 것은 당연한 원리, 그런 것에 연연하면 일할 생각 말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더러 외국인 고객에게 내 경력이 도움이 될 때마다 보람도 있고 젊은 고객들을 상대하다 보니 나도 젊어지는 것 같아 일하는 것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라며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의 긍정적인 마인드의 원동력은 리비아 내전 상황에서의 기억이다.
서 씨의 근무지를 따라 평생을 같이한 아내 이영빈(63)씨와 1녀 1남 아이들, 스스로가 사라질 수도 있는 일촉즉발 위기 상황에 대비해 밤새 공포에 떨며 대화를 나눴던 그 밤들을 이겨냈기에 그와 가족들은 ‘오늘의 소중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자’를 좌우명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10년은 더 엔포드호텔 벨 데스크로 근무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삶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메신저가 되고 있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