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용 수필가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이면 탄금대 추억들이 생각난다. 지난달 퇴근길에 잠시 들러 고즈넉한 숲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탄금대 사연 노래비가 눈에 들어온다. 우거진 녹음 속에서 백봉 선생이 작곡한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탄금정 굽이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탄금대는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자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왜적과 격전을 치른 전적지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연유로 탄금대는 충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로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여고 3학년 때 탄금대로 가을 소풍을 갔었다. 전교생이 시내를 행진하며 이곳 야외 음악당까지 걸어왔다. 그때는 말이 소풍이지 행군으로 시작해서 행군으로 끝나는 시절이었다.
점심을 먹고 음악당 앞에서 1학년부터 3학년 전체가 모여 학년별 장기 자랑을 가졌다. 그때 교련 선생님이 나를 지목했다.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무대로 뛰어올라 무반주로 노래를 불렀다. 그때 불렀던 노래가 김민부 詩, 장일남 곡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한 노래 후렴에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라는 가사가 있다.
왜 그 노래가 신나는 유행가를 두고 마음에 닿았는지 지금도 음악당을 보면 여고 시절 마지막 소풍 날 친구들과 보낸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또 고등학교 졸업 후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 친구 K, Y와 함께 음악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오전 근무를 마친 토요일 오후면 우리는 음악당 앞에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탄금대를 한 바퀴 돌며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그 기억으로 스무 살 사회초년생 때 이루지 못한 꿈들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며 탄금정에 도착했다. 유유히 흐르고 있는 남한강 물줄기를 바라본다. 깊고 푸른 강물 속에서 내 마음 깊이 박혀 있는 한 사람, 기다려도 오지 못하는 사람, 그걸 알면서도 어디로든 흘려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A랑 데이트를 즐겼던 그날은 아카시아 꽃향기가 짙었다. 계단에서 이파리 하나씩 따서 손에 쥐고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이긴 숫자만큼 계단을 누가 먼저 내려가는지 게임을 하였었다. 진 사람은 벌칙으로 상대가 해달라는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게임이 은근히 두려우면서도 재미있었다. 선을 넘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낭설처럼 되어 버렸다. 애틋한 사랑은 노년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추억이 되었고 그 빈자리에는 해마다 5월이면 하얀 꽃향기만이 남아 내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가슴앓이가 컸던 40년 전 첫사랑 이야기다.
유서 깊은 충주의 명소 탄금대는 그렇게 많은 사람의 많은 사연이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다. 시내에서 차량으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대문산으로 불리던 야산은 울창한 송림으로 풍광이 빼어나다. 경치도 좋지만 넓고 평평한 길이라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걷기에 무리가 없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A와 함께 걸었던 계단 옆 아카시아 나무들은 고목이 되었다. 굽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붉은 저녁노을은 젊은 날 추억마저 곱게 물빛으로 물들여 버렸다.
멀리 충주 시내를 내려다보는 탄금대는 세월에도 변함없이 오늘도 푸르르다. 그 그늘로 시민들을 보듬어 꿈과 위안을 준다. 삶에 지쳤을 때 잠시 쉬어가라고 어깨를 도닥이는 탄금대, 어디선가 우륵의 가야금 소리가 들릴 듯해서 귀를 재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