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윤 수필가
6월엔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다녀온다.
새 학년 새 반에서 친구들과 공부한 지 석 달여 되는 이때가 딱 좋다고 생각했다. 이때쯤이면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의 그룹이 정해지는 것 같다. 학교와 반이 바뀌어도 비교적 쉽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때론 불협화음이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혼자인 아이들을 볼 때는 안쓰럽기도 하다. 종일 붙어 앉아 알콩달콩하는 짝꿍이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요즘은 짝꿍 없이 혼자 앉는 반이 많은 모양이다. 학급당 20여 명 안팎으로 적어진 학생 수의 영향도 있을 테지만 어쩐지 코로나19 때 거리두기를 하느라 짝꿍 없이 앉았던 교실 풍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매년 같은 여행사와 버스회사를 이용하니 신청 학생 명단을 짜고 정해진 금액을 수납하여 전달하면 그뿐, 딱히 준비할 것도 없다. 참가하는 학생 대부분이 중학생인데다 초등 고학년 이상이니 아이들을 케어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
나보다는 오히려 아이들이 더 고민한다. 무엇을 먹고 어떤 놀이 기구를 탈지, 누구랑 함께할 것인지를 두고 아이들은 분주하다. 하긴 나도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보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를 우선순위로 하는데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언제나 무엇이나 사람에 관한 것이 가장 어렵고 복잡한 것 같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놀이공원에 다녀오기로 공지한 1주일 후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누구랑 같이 다닐 생각이냐고. 그때까지는 따로 정해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둠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중학생들도 열 명 남짓 무리 지어 다니기로 했다는데 6학년 아이들이 두 명씩 다니겠단다. 그제야 왜 하영이가 참가를 망설이는지 알 것 같았다. 둘씩 짝을 짓고 나니 하영이는 혼자였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적어도 대여섯 명이 한 그룹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하영이가 남은 모양이었다. 하영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안 가겠다고 말했다. 이틀 후 하영이 어머니로부터 하영이가 속상해하며 울었다는 전화가 왔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도 부모인데 지켜보는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었다.
몇몇 아이들을 따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영이와 함께 하기를 싫어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 친구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제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 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종종 다른 친구의 험담을 하는 것도 듣기 불편하다고 했다. 목소리가 크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으로만 알았지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그래도 어떤 상황인지는 알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학원에서 다 함께 놀이공원에 가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다시 대화해 보라고 했다. 이야기가 잘 된 모양이었다. 하영이는 밝은 얼굴로 찾아와 친구들과 화해했노라며 웃었다. 마음고생은 했겠지만 한 걸음 나아갔을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주의깊게 관찰하니 그 후로 하영이가 변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섣불리 끼어들지 않고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이 다행이었다. 아이들도 작게나마 사회적 관계 속에 있다. 갈등과 화합을 반복하면서 상처받기도 한다. 상처에 딱지가 앉을지언정 곪지 않기를,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히기를, 혼자라도 외롭지만은 않기를 기도하며 지켜본다.
올해는 학생수가 더 줄었다. 버스 한 대로 단출하게 다녀오려고 했는데 참가율이 높아져 또 두 대를 빌렸다. 이번에는 별일 없으려나? 있어도 괜찮다. 우리네 삶이야 어차피 근심 걱정과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닌가. 잘 해결하면 되고 꼭 해결하지 못해도 배우는 것이 있을 것 같다.
6월 그날엔 하루가 짧고도 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