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보단 기다려 주는 사랑으로 아이들 자립 도와
세례명 ‘안젤라’... 별명은 ‘깡패’, ‘쌈닭’, ‘땡 수녀’
숨어있던 아이들, 국토대장정 이어 산티아고 순례 계획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 “아이들의 가장 큰 결핍은 결국 ‘엄마’였어요. 보통의 ‘엄마’라면 좋은 음식을 먹이고 깨끗하게 씻어주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잘한다고 응원도 할 거예요. 반면 잘못하고 있다면 따끔하게 야단도 치겠죠. 내 아이니까. 그걸 잊고 있었어요.”
햇살이 따갑던 어느 주말 오후, 청주시내 한 카페에서 이웃집 언니처럼 후덕한 인상의 송은주(63·☎010-9604-2009) 모퉁잇돌 원장수녀를 만났다.
베일(머릿수건)을 쓰지 않아도 되는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1840년 프랑스의 신앙 위기 극복을 위해 밀레 신부가 만든 수도회) 소속이라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짧은 생머리가 더 친근하다. 세례명은 안젤라. 별명은 ‘깡패 수녀님’, ‘쌈닭’, ‘땡 수녀’ 등이다.
세상 근심이라곤 없을 것 같은 순박한 미소 뒤에 다분히 ‘폭력적’인 별명들은 왜일까.
원인은 모퉁잇돌이다.
‘모퉁잇돌’의 사전적 의미는 ‘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놓은 돌’ 또는 ‘교회의 주춧돌이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2009년 문을 연 청주시 상당구 ‘모퉁잇돌’은 ‘트르와 사랑의 성모 수녀회’ 청주교구 사회복지법인 산하 단체로 ‘여성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이다. ‘여성 장애에 성폭력’,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도 거북하지만 특성상 비공개 재활시설이라 주소조차 알려줄 수 없는 그곳의 이야기는 자못 무겁다.
송 원장에 따르면 피해 유형에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들의 대부분은 △‘가족’(친족) 또는 잘 아는 ‘지인’ △‘1인’보다는 ‘다수’(집단)에 의해 △어쩌다 ‘한 번’이 아닌 ‘오랫동안’ 당해왔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피해 아이들의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는 화가 났다.
인지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죄 없이 받은 상처에 격분했다. 뻔뻔스러운 가해자는 물론 친고죄, 한정된 신고기간, 인권 유린 등이 자행되는 현실에 암묵하는 법정, 국회, 정부부처 등을 찾아 어르고 달래다 안되면 협박에 삿대질에 ‘쌍욕’을 날렸다. 별명은 그때 얻었다.
그러다 ‘아이’들을 봤다. 불현듯 수도자답지 못함에 통곡했다.
모퉁잇돌에는 현재 8명의 종사자와 12명의 입소자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뭔가를 함께 사는 사람들과 상의했다.
그렇게 ‘엄마’가 돼주기로 했다.
입이 좋아하는 것, 몸이 좋아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수녀로서 정확한 검진과 함께 치유에 중점을 뒀다.
그렇다고 “무조건 퍼주는 사랑을 하진 않는다”는 송 원장. 그는 “샤워도 못하는 딸이 스스로 씻을 수 있도록 열 번, 백번 설명해 주고 풀린 운동화 끈을 무릎 꿇고 앉아서 묶어주는 엄마가 아니라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묶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있다”며 “참아주고 도와주고 기다려 줘서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우리들 엄마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웅크리고 있던 모퉁잇돌 아이들도 문을 나섰다.
2013년, 강압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어른’ 경찰관의 안내를 받으며 ‘어른’ 엄마들과 함께 전국 23개 국립공원 완주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647㎞ 국토대장정을, 부산 해맞이공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지 764㎞ 해파랑길 완주에 팀별로 성공했다. 3기 도전자들은 내년 4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설 계획으로 부풀어 있다.
그들을 버렸던 세상을 품기 위해 길 위로 나선 딸들의 성장에 맞춰 모퉁잇돌 엄마들도, 송 원장도 성장하고 있다. “혼자라면 갈 수 없는 길, 함께라면 갈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있기에.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