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6월의 아침햇살이 산 아래 내렸다. 초록 나뭇잎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이 마침 윤슬 같다. 산자락 외양이 천진하게 고와서 마음이 더 시리다. 햇살과 나뭇잎과 살랑이는 바람결이 내 눈에 가득 찬 눈물과 함께 출렁대니 살짝 어지럼증이 일어난다.
유월은 우리말로 누리 달이라 한다.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 차 넘치는 달이라는 뜻이란다. 온천지에 푸르름이 역동하고 전답의 작물이 여물기 시작하니 생명이 살아 넘치는 누리 달이 분명하다.
천지가 생동하는 청청한 날에 여덟 명이 함께하던 대화방을 통하여 그분의 소천 소식이 황망하게 전해왔다.
하얀 국화 꽃송이 아래 그분의 이름이 망인이라 붙여진 부음이 날아들던 날, 일곱 명의 일원들은 그 비통한 소식 앞에 누구도 선뜻 답을 달지 못했다. 어떤 말을 한들 처창한 심정을 글 몇 줄로 위로가 될까. 굳이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아도 친우(親友)를 한순간 잃은 것이 스스로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말이다.
작년부터 그분의 건강이 조금씩 이지러지고 있었음에도 소탈한 미소가 하도 환하여 깊어진 병색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언제까지나 늘 활달한 모습으로 함께할 줄 알았던 안일하고 무심했던 관심을 남은 일곱 명은 한마음으로 자책했다.
그분과는 십수 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만나 운동을 하거나 한끼 식사를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며 맺은 인연이다. 점수를 겨루기보다는 진솔한 마음을 나누는 친선에 더 의미를 두자는 뜻으로 모임명을 ‘좋은 사람들’이라 이름했었다.
그분이 주도하던 친목모임에서는 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공을 잘 치기보다는 좋은 사람들과의 느긋한 어울림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깨우쳐 주려 했으며 때론 인생의 선배로서 고달픈 삶에서 얻은 생채기를 다독이며 위로해 주곤 했었다.
시원스러운 스윙으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공이 멀찍이 산자락을 넘어갈 때면 순진한 아이처럼 그분은 환호했다. 산골짜기를 울릴 만큼 큰 너털웃음과 함께 천진난만한 그분만의 재치 있는 몸짓으로 일행을 한바탕 웃게도 했었다.
경쟁 사회의 일원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던 우리에게 한 달에 한번 만나 잔디 위를 거니는 그 시간은 삶의 쉼표이자 충전이었다. 그런 모임의 리더로서 장형(長兄)의 자릿값을 톡톡히 해내 주던 든든한 울타리요, 빛이 돼주던 분이었는데….
무거운 침묵 속에서 보낸 사흘, 그분이 이승을 떠나 기어이 저승을 향해 하늘로 오르는 날이다. 이 처연한 날, 초록 잎새 나폴대며 싱그러운 유월의 풍경은 왜 그리도 눈이 부신 건지. 산자락 어디선가 꽃향기가 구절 없이 풍겨와 정신을 아득하게까지 한다. 잔디 길을 거닐며 곳곳에 뿌려놓았던 그분의 너털웃음 소리 한바탕 바람 타고 아슴아슴 들려오길 부질없이 기다렸다.
어떤 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저승길에 오늘처럼 찬란한 유월의 풍경을 담고 떠나는 그분의 발걸음은 정녕 가벼웠을까.
그분이 누운 관이 화구속으로 들어가며 정말로 이승을 떠났음을 실감했다. 덩그러니 남은 영정 사진 속의 환한 미소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함께했던 시간도, 추억도 손에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저물어간다는 사실이 가슴 깊은 곳까지 스미며 저릿하게 아렸다.
묵직한 침묵과 함께 마른침만 삼키던 일곱 명은 화장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에 시선을 던지며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휴대폰 속 대화방에 그분의 이름은 여전히 거기 있는데 아직 열어보지 않은 ‘1’이라는 숫자가 아프게 눈에 들어온다. 환히 웃고 있는 그분의 사진 아래 나는 조용히 마음 한 줄을 적었다.
"늘 곁에서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