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탁 소설가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니 그에 대한 기억은 일방적이고 편파적이다. 그는 20대 청년일 때 타인과 눈을 마주치는 걸 어려워했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꺼렸다. 그렇지만 책임의 무게가 커지는 마흔이 되자, 그는 외모도 성격도 수컷처럼 변했다. 가장과 관리자의 역할에 부응했는데 내가 보기에 그리 나쁜 변화는 아니었다.
그는 대표이사의 눈에 띄어 핵심 팀을 맡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자 두 팀을 더 맡아 세 팀의 겸임 팀장이 됐다. 가족과 주변에서 걱정했지만, 그는 잠자는 시간까지 아끼며 세 팀을 주축으로 회사의 매출을 갑절로 키웠다.
그러자 다른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핵심 팀 셋을 한 사람이 맡는 건 불안하다고. 차마 내색은 못 해도 임원들조차 너무 커져 버린 그의 비중이 버거웠다.
대표는 그가 걱정됐다. 그는 원칙주의자였고 타협에 약했기 때문이었다. 기준보다 상황을 살피라고, 먼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을 경계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대표의 의견을 따르려고 노력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늘 타협보다 효율을 앞세웠다. 그게 20대의 그와 마흔넷의 그가 다른 점이었다.
후배들은 점차 그를 어려워했고 선배들은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어느 날 대표가 그를 불렀는데 대표의 얼굴이 어두웠다. 그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걸 직감했다.
“투서가 여러 장 들어왔어. 누군지 알려줄 수는 없지만 자네가 내용은 알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자네가 박 차장과 윤 차장만 챙긴다더군. 사석에서는 대표와 회사를 심하게 비난하고. 자네 팀원들 몇 사람에게 은밀히 확인했는데, 대부분 인정했어.”
한 장도 아닌 여러 장의 투서가 동시에 들어오다니. 몇 사람의 얼굴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럼에도 그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뒤 그는 그 답변을 여러 번 후회했다. 자신의 단점을 고스란히 노출한 유치한 답변이었다고.
“대표님은 좋은 팀장을 두신 거 같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팀장이 세심하게 챙겼으니까요. 게다가 열심히 제 비리를 캔 사람들이 고작 찾아낸 거라곤 술자리에서 대표님과 회사를 안주 삼은 것뿐이네요. 횡령이나 뇌물도 아니고.”
대표는 그다운 그의 말에 공감하며 소탈하게 웃었다. 이전처럼 대화는 친밀했고 신뢰는 조금도 금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이전과 달라졌다. 그를 둘러싼 공기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투서한 사람들에 대한 미움보다 자신에 대한 자책이 컸다. 무엇보다 가족에게 미안했다. 함께할 시간까지 아끼며 일궈낸 일이 결국 이런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두 개의 팀장 자리를 내려놓았고 시간이 더 지나자, 나머지 자리도 후임에게 맡기고 회사를 떠났다. 새 회사에서 그는, 권한은 약해도 필요한 팀을 맡았다.
최근에 그에게 물었다. 그때 회사를 떠난 건 투서한 사람들과의 어색함, 아니면 투서를 인정했던 몇몇 팀원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냐고. 그는 단지 자신의 속도와 그 사람들의 속도가 달랐을 뿐이라고 진솔하게 답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거리가 벌어졌어요. 함께 가야 했는데…. 회사를 떠난 건 그 사람들의 속도를 존중해서였어요. 제게도 변속이 절실한 시점이었고요. 속도를 늦추니 오히려 더 많은 걸 얻었어요.”
20대 청년처럼 수줍게 웃는 그에게 내가 그 회사는 지금 어떠냐고 물었다. 그가 안타깝게도 그 회사는 없어졌다고 답했다. 나는 회사가 그의 속도를 유지했더라면 여전히 생존했을 거라는, 편파적인 생각을 했다.
- 26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