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지금 우리는 중요한 회복의 기로에 서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한국 사회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혼돈을 겪었고, 국가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그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작년 한 해에만 1만 4천 명이 자살했다. 이 중에서도 50대 남성이 자살률 1위에 올랐고, 그 뒤를 40대 남성이 이었다. 전통적으로 자살률이 높았던 고령층을 앞지른 이 현상은 충격적이다. 가계와 생계를 책임져야 할 중장년 남성층이 전년 대비 15% 이상 더 많이이 삶을 포기했다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불행이 아니다. 사회 구조와 정책의 실패, 국가의 무능이 빚은 참사다.
여기에다 작년 의료대란으로 인한 초과사망자도 거의 4천 명이다. 병원에 가지 못해, 수술이나 응급조치를 제때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평생 의료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한 대가가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보면 작년 한 해 동안 죽지 않았어야 할 사람들이 2만 명 가까이 사망했다. 이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숫자 하나하나가 고통과 절망의 나날을 견디다 못해 꺼져간 삶이고, 그만큼 국가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것이다. 사회안전망의 붕괴, 의료체계의 마비, 민생의 파탄은 더 이상 우연도 아니고, 예외도 아니다. 그 자체가 구조적 폭력이며 정치의 실패다.
그러나 이런 국가적 비극 앞에서도 국회나 정당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고 있다. 연말에 시도된 계엄령 선포는 국민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그 고통을 억압하려는 폭력이었다. 절망의 심연에 빠진 국민에게 총검으로 침묵을 강요한 것이다.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 절망의 연쇄를 복원해내는 데 얼마나 성공했는가. 아직 요원해 보인다. 특히 최근의 추가경정예산(추경) 논의만 봐도 그렇다. 이번 추경에서 민생회복 쿠폰은 마치 ‘국민 선물’인 양 포장되고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그것은 국가가 팬데믹 기간 동안 집합금지와 거리두기를 따르며 발생한 국민의 손실에 대해 지불해야 할 정당한 보상이다. 이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며, 포퓰리즘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럼에도 이를 ‘당선 축하금’이라며 비아냥대는 야당과 이를 포퓰리즘이라 조롱하는 언론은 민생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다. 작년의 죽음들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없이 이 나라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정도 추경을 편성하면서도 재정의 건전성에 대한 명확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추진된 부자 감세 정책으로 인해 무려 87조 원에 달하는 세수 결손이 발생했음에도, 이 결손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재정은 무한한 국가 신용카드처럼 남용되고, 그 부담은 미래 세대에게 전가된다. 국민의 고통은 여전히 "가계의 위기"로만 축소되어 소비되고, 국가는 그것을 빚으로 외면한다. 이것이 과연 책임 있는 국가의 자세인가.
대한민국은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한 성장률 반등이나 증시 상승, 원화 강세로는 진정한 회복이라 말할 수 없다. 회복은 먼저 반성과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는가. 왜 국가는 그 죽음을 방치했는가. 그리고 지금이라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가는 이 질문 앞에 응답해야 한다. 고통의 구조를 복원하고, 삶의 존엄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회복을 말해야 하는 이유다.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정책과 제도가 있었고, 그들을 지킬 수 있는 정치와 국가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국가는 그 책무를 저버렸다. 이제는 과거를 덮을 것이 아니라 직시해야 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고, 정치는 고통을 줄이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 회복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며, 통계가 아니라 사람의 얼굴에서 시작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