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순 동화작가

▲김송순 동화작가
▲김송순 동화작가

아주 오래전에 친정집에는 ‘몽몽’이란 이름의 강아지 모양 베개가 있었다. 우리 집 애들은 그 분홍색 베개를 좋아하여 할머니네 집에 자주 가곤 했다. 몽몽이랑 같이 잠도 자고, 몽몽이랑 같이 놀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몽몽이를 집에 데리고 가겠다고 떼를 쓰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몽몽이는 혼자 계신 할머니랑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아무튼, 몽몽이에 대한 애착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시들해졌다.

그때는 아이들의 행동이 우스워 보였는데, 나에게도 그런 증상이 생겼다. 여름 스카프에 대해 애착하는 마음이다.

그 스카프는 작년 여름에 작은 마트에서 산 건데, 살 때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가격은 비싸지 않았지만 기다란 삼각형 모양이라 목에 두르기도 좋았고, 짙은 초록색 바탕에 수를 놓은 것 같은 무늬는 완전히 내 취향이었다. 그래서 외출할 때마다 그 스카프를 꼭 챙겼다. 에어컨 바람 앞에서는 목을 감싸줘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항상 들고 다니고 싶을 만큼 좋아했다.

나는 가방에서 그 스카프를 꺼낼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은근히 자랑하곤 했다.
“이거 참 예쁘죠?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내 말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실크로 만든 것도 아니고, 색상이 화려한 것도 아니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처럼 스카프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이 거의 다 지나갈 때쯤 그걸 잃어버렸다. 차 안에서 분명히 목에 둘렀는데 집에 와보니 없었다. 아무리 아쉽고 애달파도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그러고는 가을, 겨울, 봄! 이렇게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그 사이에 스카프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점점 옅어져 가고 있었는데, 올해 여름에 그 스카프를 다시 만났다.

작년에 갔던 그 마트에 내가 좋아했던 바로 그 초록색 스카프가 걸려 있었던 거다. 계절마다 다른 스카프를 갖다 놓는다더니, 여름이 되면서 작년에 팔았던 그 스카프를 또 갖다 놓은 거였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반가워 마트 안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나의 애착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 스카프를 갖고 나갈 때마다 또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했다. 며칠 전에는 가방에 넣어두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는 온 집안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다가 집에까지 태워다준 지인의 차에 떨어트리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차 안에 내 스카프가 떨어져 있지 않았냐’는 문자까지 보냈다가 ‘있었으면 물어보지 않았겠냐’는 짧은 답장을 받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잠깐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깨달은 거다. 지인에게 여러 번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조그만 스카프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남긴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초록색 스카프에 대한 애착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되니까, 아예 방 한가운데 걸어놓았다. 이런 증상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건강하지 못한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애착하는 마음이 크면 서운한 일도 많이 생기고 상처받는 일도 많아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차 마시고 밥 먹자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좋아하는 물건은 탁자 밑에 숨겨놓을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서면 입이 먼저 웃어버리니까 그 마음을 숨길 수도 없다. 다정도 병이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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