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해야만 재산분할 가능한 법 개정돼야”
민법 상 부부의 동거 협조 의무도 개선 시급
폭력·외도로 인한 가출·별거로 유책자 낙인 안돼

▲정복자 (사)청주가정폭력상담소 대표
▲정복자 (사)청주가정폭력상담소 대표

“양성평등을 주창하는 시대인 만큼 여성, 남성 등 성 구별은 의미가 없습니다. 매 맞는 아내가 보편적이었지만 매 맞는 남편도 있는 시대니까요. 다만 아직도 피해자의 대부분은 아내이고, 행위자의 대부분은 남편이라는 통계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들 중 이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안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도와주되, 이혼을 하지 않고도 권리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 또한 우리의 할 일입니다.”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삼강오륜’ 중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뜻의 ‘부부유별’(夫婦有別)이 요즘엔 ‘이혼이 잦은 시대 부부끼리 재산은 따로 관리해야 한다’는 뜻으로 유용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게 부부로 10년, 아니 50년, 60년을 살았다고 해도 우리 민법상 ‘남편’의 이름으로 등록돼 있는 재산은 절대 ‘부인’의 것이 되지 않는다. 합의를 하지 않는 한, ‘이혼’을 해야만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

또 있다. 민법상 ‘부부’는 ‘동거 협조’의 의무가 있어 폭력·외도 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가출이나 별거 시에도 법을 위반한 유책자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정복자(65·사진) (사)청주가정폭력상담소(☎043)257-0088, 0086) 대표가 이러한 법의 맹점을 보완·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는 1960년 서울 출생으로 이화여대 법학과를 나왔다. 스물여섯에 남편 조경환(69)씨와 결혼, 1남을 두며 청주 사람이 된 지 40여년. 모 법무법인에서 민사실장, 사무장으로 20년 넘게 근무하다 2010년 현재의 상담소를 인수해 15년 동안 이끌어 왔다.

그가 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을 잘 몰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법률 상담, 화해 조정과 대서, 소송대리 등의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법률구조법인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전국 17개 지부 중 충청지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청주가정폭력상담소에는 그를 포함한 5명의 직원들이 연평균 3000여건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또 일주일에 3일은 법원 내 사법접근센터로 출근해 의뢰받은 서비스를 지원한다.

 

정 대표에 의하면 수많은 소송의 90%는 일방적인 폭력과 외도가 원인이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법의 허점으로 인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도 들려준다.

K(74·증평)씨는 전형적인 한국형 가부장적 남편과 50여년을 살면서 자녀들 앞에서 온갖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 수모를 당하고 고관절 상해로 앉은 채 소변을 볼 정도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보다 못해 결혼한 딸이 모친을 모셔가 몇 년째 별거 상태다. 이제 딸과 사위에게까지 폭언을 쏘아대는 남편을 상대로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신청하려니 ‘오랜 별거로 재산형성 기여도가 낮은’ 민법상 동거협조 위반 유책자가 돼 버렸다.

H(72·청주)씨는 의처증으로 평생을 괴롭히면서도 외도를 밥 먹듯이 하며 안 들어오는 남편에게 집이라도 자신의 명의로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어림도 없다. 이제 원하는 건, 차라리 독거노인 돼 기초연금이라도 받을 수 있게 “이혼만 해달라”는 것이다.

정 대표는 “행위자의 책임과 피해자의 보호는 명확하게 구분돼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적용돼야 한다”며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오랫동안 방치된 채 숨어 지내온 경우가 많아 경제적으로 아주 취약하다. 인지대, 송달료 등 소장 접수비 20만~30만원이 없어 돌아나갈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가 현재 충북도에서 지원받는 취약계층 수수료 지원금 500만원으로는 소수의 수혜자만 있을 뿐 더 많은 도움을 위해 청주시 보조금 조례 개정을 요구하며 시의회를 찾아다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혼으로라도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마지막 보루가 되고자 한다”며 “돈 걱정, 체면 걱정은 나중 일, 용기를 내 언제든 상담소를 찾아와 달라”는 그의 하소연이 고통받는 사람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징검다리가 돼주길 기대해 본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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