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희 단재고 교사

▲ 남진희 단재고 교사

질문으로 수업이 시작될 수 있을까? 아니, 수업의 목적이 곧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알고 있으며, 그 지식은 어떤 근거를 통해 정당화되는가?
국제 바칼로레아(IB)의 핵심 과목인 ‘지식이론(Theory of Knowledge)’을 처음 접했을 때,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그 물음 앞에 오래 머물렀다. 지식이론은 무엇보다 나의 사고방식과 수업을 근본부터 되돌아보게 했다.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수업, 그것이 지식이론의 출발점이다. 지식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 자체를 배우는 교육,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의 본질이 아닐까.
지식이론은 학생들이 다양한 지식 영역-역사, 예술, 과학, 윤리 등-을 넘나들며, 지식이 형성되는 방식과 관점을 분석하도록 돕는다. ‘진실’, ‘객관성’, ‘해석’, ‘정당성’ 같은 개념들을 통해 지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되고 재구성되는 것임을 배운다.
지식이론 수업은 정답을 찾기보다는 질문을 확장한다. 학생들은 배운 지식이 단단한 구조물이 아니라, 질문과 토론을 통해 다듬어지는 살아 있는 생각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나 역시 어느 순간,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왜, 그리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지식이론은 교과서 속 내용을 넘어서, 일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학생들은 뉴스 속 주장에 근거를 찾고, SNS에서 만나는 정보의 신뢰성을 따져본다. 지식은 단지 암기할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검토되고 탐색해야 할 그 무엇이 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지식을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를 새롭게 배우게 된다.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며 사유하는 힘, 관점의 차이를 존중하는 자세, 설명이 어려운 질문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태도는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핵심 역량으로 이어진다.
또 이 과목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사고 훈련을 넘어 관계와 윤리까지 아우른다는 데 있다. 지식이론은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는 태도, 지식의 책임을 묻는 시선, 그리고 성찰을 통한 이해를 길러준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질문하고, 함께 생각하며, 함께 배운다. 그 안에서 수업은 지식을 넘어서 삶으로 이어진다.
지식이론은 단순히 IB 교육과정이나 특정 학교에서만 적용되는 과목이 아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학생들과 나누는 모든 배움의 과정에, 질문을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과의 경계를 넘어 삶과 연결되는 교육을 꿈꾼다면, 지식을 묻는 힘을 기르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식이론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중심으로 끌어낸다. 지식은 답이 아니라,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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