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 나온 농부, 마을에 그림책을 심다
충남 부여군 송정리에는 특별한 마을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따뜻한 감성이 번지는 ‘송정그림책마을’. 이 마을 한가운데서 그림책 같은 삶을 펼쳐가는 사람이 있다. 이선정(47·사진) 송정그림책마을 사업단장이 그 주인공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서강대 법대를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을 다니던 그는 2017년 우연히 시작한 ‘한 달 살기’를 계기로 송정리에 발을 들였다. 찻집이 막 완공되던 마을에서 잠시 일손을 돕던 그는, 어느새 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그는 500평의 밭을 일구며 고구마와 호박, 매실, 체리를 키우는 6년 차 농부이기도 하다. 동시에 마을 주민이 쓰고 만든 그림책으로 사람을 잇고, 마을을 디자인하는 기획자이다.
이 단장은 “농사도 마을도 똑같이 시간을 들이고, 손을 쓰고, 기다려야 한다”며 “소멸되어가는 지역을 살리는 길은 이곳의 역사를 알리고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 도시와 농촌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단장이 참여하고 있는 송정마을 재생사업은 충남도와 부여군이 함께하는 균형발전 2단계 사업으로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작은 도서관, 북카페, 마을 아카이빙, 그림책 창작프로그램 등 문화 인프라 구축과 함께 지역살리기 일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4년 2월에는 농촌체험휴양마을로도 지정됐고 올 6월에는 부여보건소와 협약해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김영미 그림책 비평가와 함께 그림책 북콘서트도 열어 주민과 방문객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마을이 젊은 사람들에게도 문을 열어야 한다”며 “머무를 수 있는 구조, 일할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사람이 오고 남는다”고 강조했다.
최근 송정마을에는 프랑스 자수 강사, 정원사 등 재능 있는 귀촌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다.
이 단장은 “공동체는 직업보다 마음으로 연결돼야 하고 감성적 인프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들이 마을의 인재가 되어갈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는 그림책을 매개로 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설계하고자 한다. 언젠가는 마을의 빈집을 북스테이 공간으로, 누구나 작가가 되는 그림책 창작마을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다. 현재는 전주대 대학원 로컬비즈니스학과에서 ‘마을 만들기와 스토리텔링’의 관계를 연구하며, 실천과 이론을 오가며 길을 닦아가고 있다.
왜 대학원에서 공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공부는 대나무의 마디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의 경험들을 중간중간 정리하고 이론화하는 공부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 그 단단한 마디를 딛고 경험도 자라고, 마을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선정 단장이 주민들과 함께 그려가는 그림책 마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듯, 마을도 사람도 그렇게 자라고 있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마을을 바꾸는 건 결국, 사람의 손이다.
부여 도복희 기자 phusys2008@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