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용 수필가

▲김향용 수필가
▲김향용 수필가

바쁘게 출근한 날이다. 업무를 시작하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다. 늦게까지 주무시는 것을 보고 출근했는데 갑자기 어눌한 말로 쓰러졌다는 소리가 내 귀에는 “피를 흘렸어”라는 말로 들렸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우선 급한 대로 남동생에게 얼른 가보라고 재촉했다. 잠시 후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어지러워 일어나지 못해 이비인후과 병원으로 모시고 간다는 소식에 십 년 전 이석증으로 고생하셨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팔십 대 초반이었다. 달팽이관이 빠져나와 제 자리를 잡으려면 의사의 지시대로 소파에 앉아 왼쪽 오른쪽 옆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나는 연습을 하곤 하셨다. 지금은 똑같은 진단인데 사흘이 지나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지금까지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살아오셨다. 올해 아흔넷이지만 어디가 특별히 좋지 않아 약을 장복하는 것도 없었고 보약 한 번 드신 적도 없었다.

엄마가 지금까지 건강한 비결이라면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을 조심해서일 것이다. 드시는 것도 조금씩 나눠서 소식하고, 그리고 또 하나는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낸다. 이십 년이 넘도록 일주일이면 두 군데씩 노래교실을 다닐 만큼 잘 걷고 허리도 꼿꼿하시다. 어쩌다 노래방 갈 기회가 있어 모시고 가면 엄마는 그 많은 유행가 가사를 다 외울 정도로 명민하시고 흥도 많으셨다.

어느 날 새벽 엄마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가만히 문을 열어보니 화투짝으로 재수를 떼는 중이다. 잠옷 바람으로 두 다리 쭉 벋고 아주 편한 자세다. 어떤 날은 바둑알을 가지고 놀고 있거나 어떤 날은 종이학을 접는다. 잠이 안 온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같이 놀자고 청하는 법 없이 혼자서 보내는 것이 나는 참 고맙다.

뿐만이 아니다. 경로당에서 친구분들과 어울려 고스톱을 친다거나 그 주 노래 교실에서 배운 노래를 노트에 옮겨 적고 흥얼거리며 가사를 외우는 모습을 볼 때는 엄마가 연세에도 불구하고 치매에 걸리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엄마를 가까이 모시면서 노년의 삶을 생각할 때가 많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요즘 노인들은 어떻게 노후를 준비할까.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지인께서 카톡으로 보내준 글이 오래 잊혀지지 않는다. 늙어서 팔자 좋은 사람의 7가지 특징이라는 글로 △크게 아픈 곳이 없다 △가족과 사이가 좋다 △불러주는 곳이 있다 △좋아하는 취미생활이 있다 △잘 먹고 잘 잔다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마음이 편안하다 등이 포함됐다. 단순해 보이는 요건이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 싶다. 건강관리하고 평생 동안 열심히 노후자금을 확보하고 가족을 챙겨 돈독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주변 사람과도 잘 지낼 때 가능하지 싶다. 우리 엄마는 분명 합격이다.

오남매 자식들의 효도로 마음이 늘 풍성하고 베풀기를 좋아해서 친구가 많다. 집안 살림살이 다 하면서 개인의 여가 생활을 잘하셔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누워계신 엄마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수안보 온천을 배낭 메고 시내버스 타고 다니고 어떤 날은 기차를 타고 서울을 가신다. 남대문 시장에서 마음대로 옷을 고르고 먹고 싶은 음식도 찾아 먹었다는 자랑도 듣기 좋았다.

오후 퇴근길 엄마가 평소 좋아하는 송어회랑 매운탕을 사다 드렸다. 비빔회를 맛있게 들면서 “혼자 어디 가는 것은 이제 자신이 없어”라고 하신다. 그 말씀이 왜 이렇게 내 가슴에 사막의 바람을 일으키는지. 엄마를 꼭 안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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