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현 오스테리아 문 대표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이탈리아어로 해석하면 ‘과소평가’, ‘얕본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본 의미와 다르게 요리, 패션, 스포츠, 미술 등에서 이탈리식 장인정신을 나타내는 문구로 널리 사용된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이탈리아 말인데 16세기 이탈리아 카스틸리오네 백작 '궁정인의 책'에 등장하는 이 말은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티가 나지 않게, 말과 행위를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스프레차투라의 경지’라고 표현한다. 어려운 것을 행하고는 마치 자신은 타고난 것처럼 쉬운 일이라고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는 이탈리아 요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박하고 멋 부리지 않고 과하지 않은 듯 무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플레이팅이지만, 막상 먹어보면 재료의 맛과 여러 가지 부재료들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세련됨과 예술성을 느끼게하는 마법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 셰프가 되고자 했을 때는 나의 요리를 위하여 재료를 뭘 더하고 더욱 풍부한 맛이 나게 화려하게 치장하고, 또 오만하게 보일 정도의 플레이팅(접시에 재료를 담는 행위)을 즐겨하며 혼자 만족하던 부끄러운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고 여러 대가들의 요리를 경험하고 또한 다양한 손님들을 대접하며 생각이 점점 바뀌어 가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더하려고만 했던 나의 요리에 지금은 어떻게 하면 뭘 더 뺄 것인가, 더 간결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플레이팅 또한 더 겸손하고 여백이 남게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이런 노력들이 어색하지 않고 더 편안하게 손님들에게 다가가려는 요리사의 참모습이 아닐까 생각도 한다.
맛의 표현 또한 초창기에는 먹자마자 머리를 때리는 것처럼 강렬하고 완벽한 맛을 추구했지만그것은 첫 한입이 완벽할 뿐 한 그릇을 다 먹기엔 버겁고 나중에 소화될 때에도 아주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조금 더 자연스럽고 가벼운 첫입의 맛으로, 엄마가 해주던 음식처럼, 한 그릇을 다 먹어도 부담이 없으면서 나중에 소화까지 잘되게 하는 고도의 계산까지 생각하게 된다. 요리란 단지 미식을 위한 것이 아닌 포근한 첫맛의 기억과 풍부한 영양 그리고 돌아서면 또 생각나는 편안한 느낌까지, 하나의 경험으로서의 기능을 이해하게 된다.
가수 이승철의 음악을 듣는 것을 참 좋아한다. 전체적으로 힘을 빼고 편안하게 노래를 하지만 그 아무렇지도 않은 숨소리와 의도된 엇박자들이 마치 계산된 우아함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인 지네딘 지단의 플레이를 보고 있자면 숨이 막힐듯한 그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빠르고 에너제틱한 선수들 사이에서 비교적 느리지만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정교한 기술과 볼 컨트롤 만으로도 모든 상대를 얼음처럼 만드는 모습, 게다가 유유자적 그저 평소 하던 걸 보여줬을 뿐이라고 말하는 듯한 무심한 표정까지, 정말 완벽한 스프레차투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 경지에 오르려면 남들은 모르는 피나는 노력과 엄청난 연습의 상태를 (데코로) 오랫동안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마치 영화 ‘타짜’의 평경장이 말하는 “내가 화투고 화투가 나인 물아일체의 경지”가 되는 것이다.
기술을 넘어선 우아함, 무심한 듯 여유롭고 능수능란하며 힘들고 외롭게 노력해서 나오는 결과, 아무렇지도 않게 대단한 것을 표현하는 기술인 스프레차투라를 위해 오늘도 부단히 연습하며 노력하고 있다.
다만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조금 외롭고 은밀하지만 꾸준하고도 치열하게 요리하고 싶다.
완벽한 ‘스프레차투라’를 완성하기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