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여성학박사

▲ 박혜경 여성학박사

십인십색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특정인에 대한 평가는 사람들 간에 다를 수 있다. 저마다 그 사람과의 경험이 다를 것이고, 평가자의 기준이나 가치관도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어머니를 둔 형제지간에도 어머니와의 경험과 기억, 나아가 평가가 현저히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사람에 대한 평가나 경험은 같을 수밖에 없다고 믿지 않으면 하지 않을 정도의 과도한 단언을 하기도 한다. “그이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은 그 특정인과 꽤 가까운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말이어서 그만큼 힘을 갖는다.
이런 말이 돌아다니면 사실을 가려내는 일이 소홀히 다뤄질 수 있다. 가해자가 했다는 특정 행위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그 행위가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면 매우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특정인에게서 내가 어떤 일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이 그이로부터 어떤 일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부인할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우리 애는 맞으면 맞았지 친구를 때릴 애가 아니라거나, 우리 남편은 성폭행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거나 등등,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사람에 관한 내 경험의 부분성을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 특목고 등 경쟁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부모를 두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욕을 해댄다는 사실이 이제는 꽤 알려졌다. 이런 말을 듣더라도 자기 자녀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몇 해 전에 한 지방의 공공기관에서 남자 상사가 여직원을 여러 번 성폭행 한 사건이 고발되는 일이 있었다. 그 부서는 업무 특성상 인원교체가 잘 되지 않는 부서라서 성폭행은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었다. 오래 참던 피해자는 현장에서 녹음을 하여 조직에 고발했다. 그 녹음을 직접 들은 사람에게서 가해자를 감싸려 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정도로 심한 성폭행이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가해자의 처벌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에 또 일이 터지고 말았다. 가해자의 부인이 직장으로 찾아와서 차마 무엇이라고 글로 적기 어려운 모욕적인 물건을 피해자에게 던지면서, 내 남편이 그러는 동안 너는 뭘 하고 있었냐며 남편의 잘못을 부인했다. 2차 가해가 일어나면, 법적으로는 그것을 예방할 책임을 가진 조직이 가해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된다. 관련자가 줄줄이 처벌되는 등 조직이 발칵 뒤집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가해자가 파면되기는 했지만, 자기가 남편을 다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부인 때문에 피해자는 더 큰 상처를 받은 사건이었다.
2000년대 초에 긴 역사를 가진 서울의 한 대학에서 남자 교수에 의한 여학생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은 가해자 처벌로 종결되었지만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웠다. 그것은 노래방에서 일어났는데 함께 있던 학생들이 술에 취한 데다 어둡고 시끄러워서 교수의 행위를 보지 못했다고 증언한 사람이 있었다. 더욱이 그 교수는 평소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사람들은 그가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고 쉬이 믿지 못했다. 그 가해교수는 한 여성단체의 조사를 도와준 일로 그 단체로부터 표창을 받은 이력도 있었다. 그 대학의 여교수회의에서 그 교수는 그럴 분이 아니라며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었다.
누군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말할 때 그이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피해자의 말을 거짓말로 모는 것과 같다. 이런 풍조 때문에 피해자는 침묵하고, 가해는 지속되고 새로운 가해자들이 생겨난다. 거짓 피해주장이나 오해와 오인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겪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비논리적일 뿐 아니라 자기 경험만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이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 기본적인 진리가 자주 잊힌다.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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