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우리 사회에서 도덕(道德)은 별로 인기가 없는 말이다. ‘도덕군자인 척한다’는 말은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면서 겉으로만 도덕을 내세우는 사람을 비난하는 데 주로 사용될 정도다. 도덕이 위선(僞善), 다시 말해 선한 척을 하는 것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필요할 때는 망설이지 않고 이 도덕이라는 말을 꺼내 든다. 주로 남을 비난할 때 그렇고 정작 자신의 행동을 판단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른바 ‘내로남불’이 사회 전반의 현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우리는 이미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멋진 말을 남긴 사람이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면서 권력을 달라고 했을 때 그렇게 해준 경험이 있다. 그 공정과 상식이 자신과 아내에게는 전혀 적용될 수 없다는 듯이 행동했던, 그리고 감옥에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전직 대통령으로 뽑은 고통스런 경험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그 한 사람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데서 더해진다.
뇌과학자들은 이런 내로남불 성향이 진화 과정에서 정착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어려운 생존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었고, 그 필요에 부응한 성향이 우리 본성의 일부로 새겨졌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성향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확증편향으로 이어지며 세상과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인지편향의 중심축을 이룬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진화의 역사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필요한 경우에 바깥의 상황은 물론 자신까지도 왜곡해서 바라보는 특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사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누구나 인지편향을 갖고 있어 내로남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말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이런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이 바람직한가를 묻는 당위(當爲)의 차원을 함께 만들어 냈다. 그냥 먹고사는 문제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묻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덕성과 아름다움, 성스러움 같은 가치들이 등장한다.
도덕이라는 말은 도(道)와 덕(德)을 합친 것이다. 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걸어가야 하는 길이고, 덕은 그 길을 걷어가기 위해 필요한 실천적인 힘이다. 이 둘이 합쳐질 수 있을 때라야 도덕은 온전한 것이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도덕은 그런 심오한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중요한 한 가지는 서양의 도덕 개념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경험한 혼란이다. 도덕은 영어로 모랄(moral)인데, 이 말은 본래 라틴어로 관습이나 풍습을 주로 의미하는 말이었다. 윤리는 영어로 에틱(ethic)인데, 이 말은 희랍어에서 유래했고 마찬가지로 풍습이라는 뜻과 함께 개인의 성향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는 도덕을 말할 때 한자어와 라틴어, 희랍어 전통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모랄이나 에틱이 관습이나 풍습을 주로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도덕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리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맞는 말이다. 조선 시대의 도덕과 21세기 현재의 도덕은 같은 것일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가 오면 그 시대에 맞는 도덕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도덕의 모든 것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을까? 사람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은 원효가 살았던 통일신라 시대나 남명이 살았던 조선에서 다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도덕에는 상대성과 함께 그 뿌리에 보편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도덕을 경시하게 된 데는 주로 유교에 기반한 전통도덕이 우리의 삶과 잘 맞지 않게 느껴지는 현실이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직적인 신분을 전제로 맺어지는 관계를 규율하는 전통도덕이 수평적인 평등을 전제로 맺어지는 민주적 관계에 적용될 수 없고 또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으로서 모두 존엄성을 갖고 있고 그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으로서 걸어가야 마땅한 길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 우리 시대의 도덕이 와야 하고, 그 도덕이 제대로 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하는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 시민의 몫이다.
많은 권한과 명예를 가진 높은 자리에 오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사청문회가 마무리되었다. 그 후보자들에게 아주 높은 도덕성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일반 시민이 지니고 있어야 하는 정도의 도덕성은 요구할 수 있다. 이 최소의 도덕성은 바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이익에 누구나 민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차마 하지 못하는 선을 넘지는 않아야 한다. 그런 상식과 선량함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살 만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이 기회에 나 자신은 그럼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