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 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우리 세대는 태어났다. 빈곤과 질병으로 희망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났다. 1990년대 K-Pop이 새바람을 일으켰을 때, '강남스타일'이 유튜브 10억 뷰를, BTS가 빌보드 1위를, 블랙핑크가 세계무대를 장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K-Drama의 변화는 놀랍다. '겨울연가'가 아시아를 감동시켰다면,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석권하였다. 한국적 정서와 스토리텔링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새삼 스스로 놀랐다.
K-Beauty의 세계적 확산도 경이롭다. 한때 우리가 서구의 화장품만 선망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 뷰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한국 여성들의 섬세한 미용 관리 문화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것이다.
K-Food의 부상은 더욱 의미 깊다. 1960년대 외국인들에게 김치는 이상한 냄새 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치, 비빔밥, 불고기, 한국식 치킨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건강 음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 한식당이 문을 연다.
K-Game의 성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PC방 게임이 이제는 세계를 주도하며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젊은이들의 게임 문화를 걱정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창의적 산업의 핵심 동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K-Webtoon의 혁신은 전 세계에 디지털 만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세로 스크롤 방식의 웹툰이 이제는 드라마와 영화의 원작이 되어 또 다른 한류 콘텐츠를 생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K-Fashion은 또 어떤가? 세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국 디자이너들이 국제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한복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독창적 미학을 선보이는 모습은 우리 문화의 깊이를 보여준다.
K-Tech의 위상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도체는 세계 1위를 차지하고, 디스플레이 기술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었다. 모바일 생태계는 전 세계 IT 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IT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K-Sports의 성과도 눈부시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부터 시작해, 젊은이가 유럽에서 활약하고, 야구의 메이저 리거, 피겨스케이팅, 배드민턴, 사격에서 양궁까지 한국 스포츠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와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K-Medical의 발전은 놀랍다. 의료 후진국이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의료관광 1위국이 되었다. 성형수술 기술의 세계적 인정, 첨단 의료 시설, 팬데믹 K-방역 모델은 전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결합된 결과였다.
이 모든 K-브랜드의 성공 뒤에는 과거 우리가 부끄러워했던 한국인의 특성들이 긍정적으로 재평가된 배경이 있다. 복잡한 존대법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세련된 문화로, 집단주의는 강력한 팀워크의 상징으로 재탄생했다.
체면의 엽전 문화는 장인정신으로, 서열 의식은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는 체계로, 감정적 성정은 진솔한 소통의 힘으로, 눈치 문화는 섬세한 상황 파악 능력으로, 심지어 성급함마저도 기회를 빠르게 포착하는 민첩성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행복한 세대다. 절망의 잿더미에서 출발해 세계가 부러워하는 K-브랜드 강국의 영광까지 한 생애에 모두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우리가 약점이라 여겼던 것들이 강점으로, 부끄러워했던 것들이 경쟁력으로 거듭나는 기적을 보았다.
K-브랜드를 꿰뚫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음악, 드라마, 미용, 음식, 게임, 웹툰, 패션, 테크, 스포츠, 의료 모든 분야의 뒤에는 탄탄한 국민 층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는 국민은 이 배들을 문화의 바다에 띄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독 ‘정치’만은 예외. K-브랜드의 영광 뒤에서 오히려 퇴보와 분열, 신뢰의 위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의 정치는 아름다운 K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치는 국민의 수준이라는 진리가 있기에, 자책과 안타까움이 더 크다.
우리 정치는 결코 우리 국민보다 앞서 올 수 없어 뵈니, 이제는 K-정치에 앞서 K-국민의 분발을 먼저 원해야겠다. 정치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K가  되기를 고대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