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

▲ 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무엇이지? 박물관에서 일하는 나도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그림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뚜렷하게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는데, 아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이다. 이 그림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1760?~1849?)라는 판화가가 제작한 목판화로 1835년 무렵에 간행된 우키요에 연작 ‘후가쿠富嶽 36경’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 이후 10점을 추가하여 ‘후가쿠 46경’이 되게 된다.
우키요에浮世繪란 '떠다니는 세상 그림'이라는 뜻으로, 현세의 여러 모습을 그려낸 그림이다. 같은 발음의 ‘우키요憂き世’는 ‘근심 어린 세상’이라는 말로 불교의 극락정토와 대비되는 현세를 뜻한다. 17세기에서 20세기 초 일본 에도江戸에서 유행한 풍속화를 지칭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니시키에錦絵라고 불리는 여러 가지 색상으로 찍어낸 목판화를 말하기도 한다.
후가쿠 36경은 후지산을 주제로 한 풍경 판화인데, 그 화풍은 프랑스 인상파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이 그림 자체가 클로드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특히 1887년 고흐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 ‘파도들이 발톱처럼 배를 움켜쥐고 있더구나!’라고 이 작품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가나가와는 도쿄 남서쪽 해안에 위치하며 가마쿠라鎌倉가 있는 미우라三浦 반도에서 요코하마横浜 부근까지의 에도만 연안 해변에서는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멀리 후지산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호쿠사이는 일본 우키요에를 대표하는 거장이며, 거의 90세 가까이 살며 장수했지만,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19살에 가쓰카와 슌쇼勝川春章 밑에서 그림을 배워 30대 중반에는 서양화와 접목해 자신만의 독특한 구도를 만들어낸 것이 특징이다. 70대 이후로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왔으며, 대표작인 ‘후가쿠 36경’도 말년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의 딸 가쓰시카 오이葛飾應爲 역시 우키요에 작가로 성장하였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라는 작품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것 같은 거대한 파도는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 같아, 보는 이들에게 자연에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 파도에 몸을 맡긴 배 3척은 풍전등화와 같은 상태이다. 이런 큰 파도에 왜 배를 타고 나갔나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배에 탄 선원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두려움보다는 엎드려 뭔가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도 자연 속에서 인내하며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 같다. 그 사이의 공간에 멀리서 솟아 있는 후지산은 영원 불멸의 존재로서 신성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인간과 자연, 한시적 삶과 불멸의 자연, 거대한 파도와 한없이 작은 인간, 덧없음과 인내, 불안과 안정이라는 코드가 이 그림에 나타난다.
호쿠사이는 서양화의 원근법을 받아들였다. 에도 막부는 쇄국정책을 펼쳤지만, 규슈 나가사키를 통해 서양과 오랫동안 교류가 있었고, 화가들도 원근법을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한 그전까지 푸른색 안료는 너무나 비쌌다. 그 원료가 되던 라피스 라줄리는 보석으로 아프카니스탄에서 주로 채굴되었고, 보석으로 만든 푸른색은 보통의 화가들은 사용할 수 없었던 색이었다. 그런데 1707년 독일에서 합성 안료 ‘프러시안 블루’가 개발되어 푸른색 안료의 가격이 낮추어졌고, 이것이 일본으로 유입되어 호쿠사이는 푸른색을 연청색, 청색, 진청색 3가지로 활용하여 음영을 표현해 파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파도의 표현 방법이다. 일정한 형체가 없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파도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선으로 그려냈다. 또한 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개의 후지산이 등장한다. 화면의 중앙에 표현된 진짜 후지산과 거대한 파도 아래 저물고 있는 파도의 물보라로 표현된 후지산이 하나 더 있음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표현과 장치들이 이후 만화로 이어지며,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 코드 중 하나인 제페니메이션을 탄생시킨 바탕이 된 것이다.
작품의 왼편에는 제목과 호쿠사이의 서명이 있는데, '호쿠사이였던 이츠가 그림北斎改爲一筆‘이라 쓰여 있다. 이는 이전에는 호쿠사이였던 예명을 이츠爲一로 바꾼 것이다. 당시 에도에는 600명 이상의 판화가와 400명 이상의 출판업자들이 경쟁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러한 그림에 열광하여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호쿠사이는 이 그림을 완성할 무렵에는 벌써 나이가 70대였고, 당시 관습으로는 이미 10년 전에 자신의 이름 ’호쿠사이‘를 최고 제자에게 물려준 뒤었다. 그러니 다시 그림을 판매하려니 예전의 영광스런 호쿠사이를 쓰기도, 그렇다고 안쓰기도 애매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쓰인 서명은 ’예전 호쿠사이였던 지금의 이츠‘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손자가 도박으로 그의 전 재산을 날려버려, 어쩔 수 없이 딸과 절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 말년, 곤경에 빠진 노화가의 처지와 경험이 이러한 명작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9월 4일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에서 이 작품을 비롯해 호쿠사이의 다른 후지산의 모습, 그리고 다양한 우키요에를 만나볼 수 있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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