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 교수

최근 국회를 통과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교육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 법안은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기존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AI 기술이 가진 과목별, 학년별 특화된 활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AI 디지털 교과서를 '주교재'와 '보조자료'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가둬버린 퇴행적 조치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번 법안은 전 정부의 디지털 전환 정책을 사실상 뒤집는 것으로, 이미 막대한 정부 예산과 민간 투자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교육 철학의 변화를 넘어선 정책의 일관성 상실과 혁신 동력 훼손이라는 중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 정치적 논리나 단기적 시각에 휘둘려서는 안 되며,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과거 정책의 오류를 보완하고 관련 산업계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정책이 절실하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가진 교육적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법안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AI 교과서가 '교과서'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장애 학습자, 다문화 가정 학생, 농어촌 학생 등 취약계층에게 고품질 학습 기회를 제공해 공교육의 책무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학생의 능동적 학습을 유도하고 AI 시대에 필요한 미래 교육 경험을 제공한다. 셋째, 공공 저작물에 대한 평등한 접근성을 보장하며, 넷째, 검정을 통한 교육 신뢰 확보와 공익 기반의 콘텐츠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
전 정부는 이러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2024년에만 AI 디지털 교과서 관련 예산으로 1조 2천797억 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원을 지방교육청 예산과 특별교부금으로 충당하면서 지방 교육청에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안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현 정부는 이러한 과거 정책의 '졸속성'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바로잡는다는 명분 아래 또 다른 '일괄 폐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더욱이 미래 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나 합리적인 대안 제시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를 신뢰하고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했던 발행사들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 '행정 폭주'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과서 지위가 ‘교육자료’로 격하되면서 교육청이 구독료를 지원할 법적 근거가 사라졌고, 이는 교육적 효과가 큰 AI 교과서의 학교 현장 활용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혁신에 뛰어든 민간의 의지를 꺾고, 미래 교육의 국제적 경쟁력 약화마저 우려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제라도 현 정부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와 시대적 변화를 동시에 고려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종이 교과서와 디지털 콘텐츠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교과서' 모델로 운영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AI 교과서를 무조건 배제하는 식의 전면 폐기가 아닌 과목별, 학년별 단계적 활용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교육 효과를 극대화하는 점진적 확대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또한, 교육부는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회를 설득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학교 현장에서 개발된 AI 교과서가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투자한 개발사들에 대해 합당한 보상 방안을 마련하고 민간의 혁신 의지를 꺾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AI 디지털 교과서 법안은 단순히 교재의 지위를 바꾸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교육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학생과 교사, 그리고 미래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신중하고 지혜로운 접근에서 비롯될 것이다. AI 디지털 교과서 기술 개발의 혁신을 존중하고, 교육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모든 이해관계자가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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