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시인

▲ 김혜경 시인

아버지의 낡은 코트 속은 언제나 따뜻했다. 추운 겨울날 아버지는 코트 자락 속에 나를 품어주셨다. 자식을 품느라 단추를 여미지 못하는 아버지의 앞가슴엔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지의 코트 속은 모직 코트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사랑의 두께로 포근했다.

며칠 전 ‘아버지가 아들을 총으로 쏴 사망케 했다’는 경악할 뉴스를 봤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식의 손톱 밑에 가시가 박혀도 안쓰러운 게 부모의 마음일 텐데 자식의 심장에 총알을 박아 놓고 그 마음은 아무렇지 않았을까. 며칠 지나 정신이 들어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른 줄 알게 된다면 하늘을 이고 살 수 있을 것인가.

어려서 학교 교육과정에 도덕, 윤리라는 과목이 있었다. 다른 과목에 비해 비중이 적었는데 아마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도덕과 윤리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배운 질서와 도덕은 우리는 지금도 꼭 지키려 한다. 누군가가 도덕적 인간인가라는 의문에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도덕의 잣대로 평가하게 되기에 도덕과 윤리 교육이 점점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자식은 먹을 것을 구해주는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하고 부모는 한없는 사랑으로 자식의 안전에 힘쓰며 교육해야 한다.

사고를 저지른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무엇을 했기에 그리 쉽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을까. 인간은 남의 아들을 살인할 수 있지만, 아버지는 그럴 수 없을 텐데 이게 뭐란 말인가. 죄 없는 어린 손자들이 아비 없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도, 용서도 되지 않는 일이다. 얼마 전 물에 빠진 두 아이와 이웃집 아이까지 구하고 물에 쓸려간 아버지도 있지 않은가. 이런 분이 진정한 아비의 마음을 간직한 분이 아닌가.

세상의 훌륭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많이 들려주면 좋겠다. 아버지는 그냥 돈만 벌어다 주는 하숙생이 아니다. 늘 자녀들 곁에서 따뜻한 사랑으로 보살피고 바르게 자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도 아버지의 책임이다. 굳이 도덕과 윤리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아도 각자의 무게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내 아버지가 가신 지 30년이 되어간다. 늘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로 남는다. 내 아버지는 체육인으로 남들은 거칠고 무서운 분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할머니의 말을 거역한 적 없이 평생을 모신 효자다. 가난한 살림에 우리 5남매를 부끄럽거나 궁핍하게 하지 않으셨다.

아침마다 나는 아버지의 구겨진 단벌 바지를 다려드렸다. 구겨지고 더러워진 바지는 아버지의 어제를 말해준다. 바지 끝이 흙투성이인 날도 있었고 찢어진 날도 있었다. 더러는 막걸리 냄새가 나기도 했었다. 바지 천이 얼마나 낡았는지 종잇장처럼 얇았다. 겨울에 나를 감싸주셨던 모직 코트의 안감도 다 닳아서 나달나달했다.

아버지의 입성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깝지 않은 것이 아버지의 이름값이다. 혼자서 대문 밖에서 한숨과 눈물을 훔치고는 문턱을 넘어오시는 순간은 가족을 위해 껄껄 웃어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무게였다.

우리 형제들이 서로 다투거나 잘못을 한 날에는 무릎 꿇고 먹을 갈게 하셨다. 한 시간을 갈아도 진해지지 않는 먹물을 원망하며 갈다 보면 무슨 일로 서로 다투었는지 이유도 잊고 그새 먹물로 장난칠 생각만을 했었다. 그때가 되면 아버지는 일어서라고 하셨고 저린 발을 꼬집으며 우리는 낄낄거리곤 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립고 미안한 맘만 가득하다. 아버지의 그 뜨거운 이름을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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