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전섭 충북문화원연합회장

▲ 강전섭 충북문화원연합회장

버드나무 잎새로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글을 올립니다. 오늘도 뒤꼍 쥐똥나무 담장 너머로 뻐꾹새 울음이 들려옵니다. 보름 전 그날 아침에 뻐꾹새 소리가 얼마나 얼마나 애절하게 들리던지요.
을사년 칠월 스무엿새는 저에게 너무나 슬픈 날입니다. 하늘나라 소풍길은 남의 일인 듯 바람처럼 스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습니다. 유독 염천의 후텁지근한 습기를 머금은 그날, 지상의 큰 별이 한 마리 학이 되어 천문성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선생님은 진흙투성이인 세상에 내려와 곳곳에 연꽃 같은 삶의 향기를 남긴 채, 모두에게 도타운 사랑을 전하고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선생님, 하늘나라에 오르는 소풍길은 험하지 않던가요. 요단강 물살이 거세진 않았나요. 천상은 폭염도 폭우도 없는 낙원일 테니, 이승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도, 번뇌도, 다툼도, 시기와 질투도 없는 사시사철 만화방창(萬化方暢)한 화원이겠지요. 지상처럼 신산의 고초를 겪으며 질곡의 강을 건너는 고난의 세상이 아닌 모두가 웃음꽃이 피어나는 천국이겠지요.
선생님은 한마디로 온유돈후(溫柔敦厚)한 분이셨습니다. 성품이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인정이 두터운 만인의 스승님이었습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를 간다’는 말처럼, 선생님은 거센 세파에 흔들리며 살아온 제 인생의 버팀목이 되고 마중물이 된 수양산 같은 존재이셨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개똥 모자를 눌러 쓴 선생님은 여전히 제 가슴 속에 별이 되어 남아있습니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선생님께서 거닐던 상당 고을 구석구석은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의 현장이 되고 신화가 되리라 믿습니다. 각종 강연에서의 주옥같은 말씀은 수많은 사람에게 회자되어 향수처럼 뿌려지고 가슴에 스며 언 마음을 녹이는 화롯불이 되었지요. 사석에서 풀어놓은 선생님의 구수한 해학과 재치는 삶에 지친 분들에게 웃음의 보약이 되고, 위로와 위안이 되었습니다. 생전에 남긴 수많은 글은 시가 되고 수필이 되어 뭉게구름처럼 문향이 피어나겠지요.
선생님은 88년의 성상(星霜)을 사시며 교직 및 문학과 문화 발전을 위해 애쓰신 큰 어른이셨습니다. 공직자와 스승으로서의 청렴함은 후배와 제자들에게 귀감이 되었지요. 평소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인자함으로 아랫사람들을 배려하고, 매사에 솔선수범하며 청주의 문화를 이끈 훌륭한 문화예술인이셨습니다. 나아가 제자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며, 문학은 수필산을 이루는 성과를 거두었고, 청주문화원은 융성기를 맞아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제가 몸담은 청주문화원은 선생님의 발자취가 너무나 많습니다. 문화원의 존재와 위상, 조직의 틀을 재정립하여 반석 위에 올려놓은 분이 바로 원장님이십니다. 사반세기 동안 저의 문화원 활동을 돌아보면, 제가 두 번에 걸쳐 원장으로서 소임을 다하는 것도, 수필가로 등단하여 문학의 길을 걷게 된 것도 모두 원장님 덕분입니다. 원장님은 평상시에는 자상하고 살가운 분이지만, 업무에서는 빈틈없이 철저한 분이셨지요. 원장님을 모시고 일하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런 원장님의 가르침대로 우리 청주문화원은 청주의 원형과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모든 문화원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고 속정 깊은 분이셨습니다. ‘강 원장, 별일 없는가? 요즘 문화원의 좋은 소식이 자주 들려 전화했네.’라고 틈틈이 제게 주신 격려의 말씀은 어려운 고비마다 많은 힘이 되었지요. 비록 당신은 가셨어도 그 고운 삶의 향기는 언제나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겁니다. 언제나 그러셨듯이 사랑하는 가족과 저희 모두를 바른길로 이끌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나아가 청주문화원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늘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멀리서나마 우화등선(羽化登仙)하신 스승님을 그리며, 향 사르고 메꽃 한 송이 바치며 큰절을 올립니다. 부디 고통 없는 천상에서 고이 잠드소서.

을사년 팔월 열흘에 강전섭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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