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서원대 헬스케어운동학과 교수

얼마 전 지인 한 분이 “요즘 몸이 무겁고 손목이 자주 아프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피곤에 지쳐 있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의 식탁이 떠올랐다. 바쁜 일상 속에서 편의점 샌드위치, 즉석 라면, 튀김 간식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만성 염증일지도 몰라요.”
염증이라 하면 상처가 붓고 열이 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 몸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저강도 불씨’가 오래 타오를 수 있다. 이것이 만성 염증이다. 시작되면 피로, 관절통, 소화불량, 심지어 우울감까지 이어진다. 연구에 따르면 만성 염증은 암, 심혈관질환, 당뇨, 치매와도 깊이 관련된다.
다행히 식탁에서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항염증 식단이 그 해답이다.
핵심은 간단하다. 염증을 부추기는 음식은 줄이고, 가라앉히는 음식을 늘리는 것이다. 가공식품, 단순당, 트랜스지방, 과도하게 구운 고기와 튀김류는 줄여야 한다. 대신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 채소·과일, 단일·다중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식품을 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연어·고등어는 염증 매개물질 생성을 억제한다. 블루베리·체리·자두 같은 진한 색 과일은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한다. 시금치·케일 같은 잎채소에는 비타민 K와 마그네슘이 풍부해 염증 반응을 조절한다. 올리브유·아몬드·호두 등은 심장과 혈관 건강에 좋은 지방을 제공한다.
실천은 작게 시작하면 된다.
아침에는 흰식빵이나 달달한 시리얼 대신 통밀빵에 달걀프라이와 아보카도를 올리거나, 현미죽에 김가루와 참깨를 뿌려 먹는다. 여기에 삶은 계란이나 두부를 곁들이면 단백질이 보강된다. 점심에는 식당에서 순두부찌개나 청국장을 선택해 두부·콩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밥은 잡곡밥으로 바꾼다. 오후 간식은 케이크나 빵 대신 방울토마토, 귤, 사과 같은 과일과 호두·아몬드를 곁들인다. 저녁은 찜·구이 형태의 제철 생선과 나물 반찬을 곁들이고, 간은 소금 대신 들깨가루·레몬즙·참기름으로 맞춘다. 들깨 속 오메가-3 지방산, 레몬의 비타민 C, 참기름의 세사민은 각각 항염증과 항산화 작용에 도움을 준다.
운동은 항염증 식단의 든든한 조력자다.
가벼운 조깅, 자전거 타기 같은 중강도 운동은 염증 지표를 낮추고 면역력을 높인다. 다만 무리한 운동은 오히려 염증을 키울 수 있으니 충분한 휴식과 균형 잡힌 식사가 필요하다.
건강은 거창한 결심보다 작은 습관에서 만들어진다.
오늘 저녁, 식탁 위에 채소 한 접시를 더 올려보자. 그 한 접시가 몸속 불씨를 끄고, 더 가볍고 활력 있는 내일을 열어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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