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순 동화작가
고등학교 동창 카톡방에 ‘자두 축제’를 연다는 공지글이 올라왔다. 공주에 사는 동창네 농장에서 축제를 연다는 거였다. 축제라는 게 친구들끼리 만나 술 마시고 밥 한끼 먹는 게 전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내가 그렇게 쉽게 결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세상 욕심 없어 보이는 동창 친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두 번째는 친구네 농장에 있다는 검은색 자두를 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집과 도서관, 찻집만 왔다 갔다 하는 나의 일상에서 하루라도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자두 축제’가 열린 날은 참 더웠고, 청주에서 공주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참 멀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있었고 낯선 곳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래서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친구네 농장에 들어서자마자,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와! 진짜 대단하다! 이걸 다 어떻게 가꿨어?”
친구의 농장에는 여러 가지 나무가 심어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두나무였다. 예전에 친구가 말한 것처럼 농장에는 포모사 자두, 대석 자두, 체리 자두, 검정 자두 등 크기랑 색깔이 다른 자두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시장 판매대에 놓여있는 자두만 보아서 그런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풍경이었다. 나는 친구가 나무에서 금방 따준 검정 자두를 맛있게 먹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많은 자두를 다 어떻게 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나?”
그런데 동창 친구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팔지는 않고 주변 사람들하고 나눠 먹어.”
“이렇게 많은 자두를?”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다가 얼른 입을 다물고 말았다. 왠지 내가 인정머리라고는 조금도 없고 이익만 좇으며 사는 사람 같아서 부끄러웠다. 사실 나는 이제까지 자두를 사서만 먹었기에 그런 말이 튀어나온 거였다.
자두 이야기를 하다가 머쓱해진 나에게 친구는 얼른 감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소금물에 우려먹는 감이야. 예전에 우리도 감을 우려먹었던 거 생각나지?”
나는 친구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기억 속의 아이를 떠올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떠올린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여름날이면 이른 새벽에 대문을 나서곤 했다. 과수원집 감나무에서 떨어진 주먹만 한 감을 풀밭 속에서 찾기 위해서였다. 그 감을 주워다가 소금물에 떫은맛을 우려내면 간식으로 먹을 만했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가 살았던 집 옆에는 커다란 포도나무 과수원이 있었고 철망으로 둘러싸인 과수원 담장 옆에는 키 큰 감나무들이 우뚝우뚝 서 있었다. 그래서 아이는 새벽에 감을 주우러 다녔는데, 과수원에서 들려오던 들고양이 소리와 새의 날갯짓 소리에 화들짝 놀라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어쩌면 그 애가 어렸을 때만 해도 집 주변에 자두나무를 많이 심었을 거고,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었을 거다. 그 애 엄마가 텃밭에 심은 가지와 호박을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던 걸 생각하면 말이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눠가며 살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농장 앞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창들이 몰려오는 소리였다.
술이 없더라도 자두의 달콤한 과즙과 인정 많은 주인장의 따뜻한 미소만으로도 맘껏 취할 수 있었던 ‘자두 축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