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시인·소설가
예전에 한국문협에서 발행하는 <월간문학>이라는 문예지에서 읽은 내용인데 전업작가가 하루 2시간 글을 쓴다고 한다. 그 2시간이 오롯이 글을 쓰는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특별하게 외출을 하거나 강의 같은 외부 일이 없는 한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물론 16시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밥을 먹고, 잠깐, 잠깐 쉬고, 낮잠을 자는 시간을 빼면 10시간 정도는 글을 쓰는 셈이다.
글을 쓰고 있으면 언제 밤 10시가 됐는지 모를 때가 많다. 명색이 소설로 등단을 했으니 소설은 꾸준히 써야 한다. 발표하지 못한(안 한?) 장편 소설이 7권이나 된다. 그래도 소재거리가 있으면 또 시작한다. 문예지에 보낼 단편, 자유칼럼이라는 칼럼집단에 보낼 칼럼 원고, 5년 전부터는 노후 걱정에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웹소설 1회 분량이 200자 원고지 40여 매 분량이다. 누군가 피드백을 해 달라고 보낸 소설이며 시를 첨삭해 주고, 때로는 창작원에 나가 지도를 하다 보면 하루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아내의 시간은 질기기만 하다. 집에서 하는 일이 종일 남편 바라보는 일이다. 그런 사정을 나이 들어서 알아 버렸으니 될 수 있는 대로 아내하고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내가 틈만 나면 나를 거실로 불러내는 것도 남편의 건강을 염려하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아내가 불러내는 가장 많은 구실 거리는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보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이다. 재미있는 영상을 혼자 보지 않고 남편과 같이 보고 싶다는데야 짜증을 낼 명분이 없다. 그게 아니면 커피, 간식, 혹은 반찬을 만들어 놓고 맛을 보라고 부를 때이다.
기본적으로 아내가 거실로 불러내면 최소한 30분 정도는 같이 시간을 보내주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은 날의 과욕이나 독선적 행동을 후회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친구들은 아내하고 같이 있으면 싸울 핑곗거리 밖에 안 생긴다고 차라리, 포도밭에 가서 낮잠을 자든지, 둥구나무 밑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종일 아내와 붙어 있어도 말다툼할 일이 없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다. 내가 잘 나서, 아내가 순종하는 까닭에 집에 싸울 일이 없는 줄 알았었다. 한데 그게 아니다.
무슨 말끝에 아내가 넌지시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지가 화날 일이 있다고 해도, 첨에 좋아가 결혼했을 때 생각하면 참아야 되는 겁니더. 우야겠노. 좋아가 결혼해 놓고, 화난다꼬 미워한다 카면 그게 사람이가.”
나이도 아내보다 한 살 많고, 공부도 배울 만큼 했고, 결혼한 이후 집안에서 살림만 하는 아내와 다르게 천방지축 날뛰며 세상살이도 했고, 나름 따르는 제자들도 있어서 아내보다 우위라고 생각하던 자만심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나는 세상을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아내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끼니때가 되면 뭐가 드시고 싶냐 묻고, 땀을 흘리며 요리나 하고, 외출할 때 러닝셔츠까지 다림질해줄 줄만 아는 여자가 아니었다. 목탁 구멍 안으로 세상이 보인다고, 아내는 나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내보다 내가 유난히 작아 보일 때가 있다.
나보다 일찍 잠들어 있는 아내를 바라볼 때다. 아내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잠든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시울이 젖는다. 보잘것없는 나를 위해 한 여자가 인생 전부를 바치며 산다는 생각을 해보면 나는 다람쥐보다 작아지지 않을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