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천초 건립자 김학경 옹 ‘이충무공임진륙주갑기념비’ 조명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ㆍ이규상 향토사학자 자료 연구 보관
8월 15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는 애국충정만으로 위급상황에 대한 경고의 내용을 글로 새겨 알리고 깨우치려 한 청주 출신 선인의 비문이 발견돼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두미 김학경(金學瓊. 1893~1965) 옹.
‘그는 1893년 충북 청원군 남이면 외천리에서 태어나 서울 보성중을 졸업했다.
1936년 외천 보안 사숙 야학당 건립, 1938년 외천 일대 산림 150정보 구입 조림, 1940년 교실 3칸 건립 간이학교 인가, 1948년 학교 주위 하천, 전답 2000여평 기증, 1952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60주년 기념석비 기증, 1953년 석재 교문 1주, 석조물 다수 기증, 1963년 교사 숙직실 창고 보수비로 10만원 기증, 1964년 부락민의 칭송으로 도로변에 송덕비 건립·학교 교문 주변에 홍학 기념비 건립’
이 내용은 향토사학자인 이규상 전 세종시 부강면장이 찍은 외천초(1940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부용외천2길 13-2에 위치했던 공립초등학교로, 2012년 남이면 남이초로 통폐합) 교무실에 붙어있던 김학경 옹 공적서에 쓰인 글이다.
선생의 공적 내용 중 ‘1952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60주년 기념석비 기증’이라는 대목이 주목된다.
처음 선생의 행적과 비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충북의 대표 한학자인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에 따르면 0~9까지의 숫자를 사용해 기념일 등 수를 표현하는 십진법이 국내에 유입되기 전, 우리나라에서는 1주갑(周甲. 또는 1환갑(還甲)=1회갑(回甲)이라는 단위를 사용했다.
1주갑은 60년으로, 김학경 옹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60주년 기념비를 기증했다는 1952년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의 6주갑(360년)이 되는 날이다. 특히 광복 80주년인 올해는 1545년 이 충무공 탄신 8주갑(480년)이자, 김 옹 서거 1주갑이 되는 해다.
이러한 때 김 옹의 ‘이충무공임진륙주갑기념비’ 는 6.25전쟁이 3년째 지속되던 해에 국가 존폐의 절체절명한 위기의식을 고취하고 충무공의 충정과 애국심을 고양하기 위해 건립된 비석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6.25전쟁을 임진왜란처럼 국가존망의 위기로 판단해, 학생과 교직원, 주민들에게 이순신 장군같은 충성심과 부모 등 가족을 지키는 기본이 효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비를 세웠다는 의미다.
선생의 ‘이충무공임진륙주갑기념비’에는 ‘충관일월(忠貫日月), 효감빙상(孝感氷霜)’이라고 한글만으로 새겨져 있다. 한자는 이상주 교수가 훈을 단 것으로, 이는 ‘충성심은 해와 달을 꿰뚫었으며, 효심은 얼음과 서리를 감동시킨다’라는 뜻이다.
이 교수는 “사용한 문구의 내용을 통해 볼 때 김학경 옹은 한문과 한글을 겸비한 유학자이자 지식인으로, 후대의 사람들이 한자(漢字)로 새겨놓으면 잘 모를까 봐, 읽기 좋고 암기하기 좋게 문구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며 “6.25전쟁 기간 중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도리와 역할을 다하기 위해, 충성심과 효심을 망각하지 않도록 비석을 세워 강조교육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어 “김학경은 역사를 보는 통찰력이 탁월했으며 그 시대에 충성했다. 따라서 김학경이 세운 ‘이충무공임진륙주갑기념비’는 문구는 간단하지만 금석학적으로나 문학표현 기교적으로도 우수한 걸작”이라며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6주갑을 기념해 건립한 한국 최초의 비석이자 한국 최초의 주갑(周甲)기념비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간과해선 안되며 광복 80년의 특별한 의미를 담아 이를 홍보·선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김학경 옹의 비는 외천초 교문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행적 자료는 선생의 손주며느리인 권명숙(78)씨가 가지고 있던 것을 이규상 사학자가 모두 인수해 보관하고 있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