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영 옥천중 교사

▲ 손미영 옥천중 교사

얼마 전, 학급 프로그램으로 ‘질문 일기’를 운영한 적이 있다. 매일 짧은 질문 하나에 답을 쓰게 했고,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길 바랐다. 물론 기대와 달리, 무성의하거나 단답형으로 끝나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의 솔직하고 가감없는 속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활동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질문의 내용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내가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은 언제인가?”,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 무엇인가?” 등. 대부분의 답변은 게임, 컴퓨터, 휴대전화 같은 디지털 기기에 집중돼 있었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중학생들이 일상에서 어떤 것에 감정과 관심을 쏟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질문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무엇인가?’였다.
몇몇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떠올렸고, 일부는 논술 학원에서 추천받은 고전이나 비문학 책 제목을 나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중 상당수는 “사실은 읽은 척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아예 관심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들에게 책은 단순히 지루하고 어렵다는 이유를 넘어, 삶에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였다.
그 순간, 교사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던 자조 섞인 말이 떠올랐다.
“수업이 교과서에 나온 단어 뜻만 설명하다가 끝나버린다.”
그리고 그 말은 농담처럼 늘 이렇게 마무리된다.
“결국, 다 제(국어 교사) 탓입니다.”
물론 나름대로 열심히 가르쳐왔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단어는 반복해서 설명하고, 활동지를 통해 정리시키고, 다양한 예문도 함께 제시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실감한다.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것이 실제 문장과 문단 속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맥락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읽기를 통해 의미가 살아 움직이는 과정을 경험해야 비로소 단어가 자신의 언어로 자리 잡는다.
이제는 생각한다. 어휘력을 키운다는 것은 결국 ‘읽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짧은 글이라도 정확하게 읽어내는 연습이 필요하고, 책 속에서 단어를 발견하고 스스로 해석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철저히 혼자만의 고유한 작업이다.
질문 일기를 통해 아이들의 언어 감각과 독서 현실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지금, 다시 ‘읽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다. 단어만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문장을 스스로 읽어내고, 그 안의 의미를 발견해 내는 수업으로 나아가고 싶다. 읽지 않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2학기의 국어 수업은 다시 ‘읽기’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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