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규 서천문화원장

▲ 최명규 서천문화원장

무더위에 숨죽이고 있던 귀뚜라미가 입추가 지나자 한두 마리씩 울기 시작했다.
그 혹독한 여름을 잘도 지내고 아직 아침공기가 더운기를 머금고 있는데도 가을이 오는 걸 알린다. 세월은 이처럼 빈틈없이 흐르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건만 정년퇴직 십년이 되도록 이룬 것은 없다. 바쁘게 살았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표현하면 좀 과한 느낌일 수 있지만 열심히 살았다.
어저께 후배 한분이 정년퇴직이 눈앞인데 걱정이라고 선배로서 돈벌이할 직장을 안내해 달란다. 나는 즉시 대답했다. 내가 만나본 많은 은퇴자들은 퇴직 후 또 다른 직장을 또 가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또 어떤 사람은 연금이 나오니 여행이나 다니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고 즐기는 그러니까 지금까지 못 해 본 즐기기를 열심히 해 봐야겠단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번뿐인 삶을 그리 무의미하게 막살아도 되는가. 누군가의 말처럼 나이 삼십 먹도록 철없이 살았고 그 후 30년은 가족을 위해 살았다고 했다. 그러니 나머지 30년은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하는 가장 값지고 중요한 시점이 정년퇴직이니 깊이 생각하라 했다.
이 시기엔 충분히 자신을 지적으로 성장시켜 지금까지 꿈꿔온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큰 그림은 개인마다 다르니 자신이 설계하고 경영해 그 꿈을 이룸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부터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나의 생각은 좀 더 일찍 계획하고 설계가 마친 상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 후반전의 대변화를 꾀했더라면 사십부터 아니 오십부터라도 워밍업이 필요하더란 말이다.
하지만 실망할 것 없다.
미국의 국민화가 그랜마 모지스란 여인은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백일세 죽을 때까지 1600점을 그렸으며 백세 즉 죽기 직전에 200여점을 그린 인물이다.
88세에 올해의 가장 젊은 여인에 선정되고 93세에 세계적인 잡지 타임지에 표지모델로 선정됐다. 이 모지스란 여인이 놀러 갈 데 모두 찾아가고 맛집 찾아다니며 맛있는 것을 즐겼다면 이런 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며 자신을 칼날 위에 자신을 세웠을까?
늦게라도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 가장 젊고 가장 빠른 인생이다.
다만 늦게 시작했다면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한다.
또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영혼을 키우는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금방 이뤄지는 것은 없다. 쉽게 얻으려 하지 말라. 또 시장원리에 의해서 본다면 쉽게 얻어지는 예술문화는 값이 싸고 허접하다. 지고한 노력으로 본성을 억제하고 치열한 노력을 십년 이십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노력을 해 봐야 그 가치가 있다. 거기에는 반드시 금전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돈을 보고 자신을 키우는 경영을 한다면 그는 장사꾼에 불과하다. 당신은 지금까지 가족과 가정 경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이제 남은 시간과 경제적 여유를 당신 자신을 위해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와 연결된 모임이나 부질없는 관계를 끊어야 한다. 이것저것 모두 손에 쥐고 있다면 그 손에 담을 게 뭐가 있는가. 나의 혼자만의 시간과 성찰의 시간이 은퇴자에게 가장 필요하고 우선시 돼야 한다.
도꾸가와 이에야쓰의 유훈처럼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다.
그러니 서두르지 마라.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이며 분노는 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나그네가 이것저것 더 가지고 짐을 늘리지 말라는 말이다. 간촐한 삶으로 무장하고 자신을 키우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여기 본성을 억제해야 한다는 노자의 한마디를 소개한다.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오색영인목맹 오음영인이롱 오미영인구상)
다섯가지 이상의 색으로 구분된 색은 분별해 한정함으로 참모습(眞相)을 보지 못하고, 여러 가지 소리로 구분된 소리는 분별해 한정함으로 참소리(眞聲)를 듣지 못하고, 다섯가지 이상의 오묘한 맛을 분별해 한정함으로 참맛(眞味)을 느끼지 못한다.
馳騁畋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치빙전렵영인심발광 난득지화영인행방)
말을 달리며 즐기는 사냥이 (분별에 휩쓸려 즐기려는 사람의 마음) 광분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가 사람의 (재물을 쫓아가는 분별에 휩쓸려 현혹되면) 행동이 무도(無道)해진다.
是以聖人爲腹 不爲目 故去彼取此
(시이성인위복 불위목 고거피취차)
그러니 본성을 깨달은 성인은 배를 위할망정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 곳에 있는 것을 버리고 가까이 있는 이것을 취한다.
화려한 색채와 광적인 음율, 그리고 맛있는 것을 탐닉하지 말라 하고 마지막 구절 즉 ‘시이성인 위복 불위목 거피취차’ 성인은 배를 위할망정 이념이나 사상이나 종교에 빠지지 않고 오직 가까이 있는 나의 지적 함양에 힘을 쓰라는 말이다.
노자의 사상이 집약된 12장의 거피취차의 해설은 지면상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