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용 수필가
지난 칠월 초, 중국 윈난성 차마 고도와 쿤밍, 여강(麗江) 여행을 다녀왔다.
쿤밍에서 석림(石林)공원 가는 날 아침이었다. 호텔에서 공원까지 1시간 30분 이동하는 동안 C 회장님의 여행 마지막 날 마무리 인사 뒤에 시낭송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스물네 명의 일행 앞에서 부끄럼 없이 용기를 내 최근 외웠던 나희덕의 '뜨거운 돌'이라는 시(詩)를 낭송했다.
내가 이 시에 꽂혔던 것은 과거의 무거운 기억, 미해결된 감정을 돌에 비유하여 손에 쥐고 살아온 삶의 속내를 반추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주어서다.
버스는 이국풍경을 스치며 달리고 길손들은 조용히 경청했다. 詩는 4연 26행의 긴 시지만 이 시를 읽고 또 읽으면 내용 하나하나가 마음에 와닿아 좋았다. 때론 내 얘기 같기도 하고 그동안 내려놓지 못한 후회가 있다면 품어 안고 하나씩 풀어가며 살아보라는 격려 같기도 해서 친근감이 들었다.
매달 중순일이면 동양에세이에 보낼 원고를 쓰면서 늘 부족한 자신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인지 유독 3연의 문장 중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이라는 행이 마음 깊이 와닿는다. 누구나 이루지 못한 목표와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이 시에 비유해서 한 번쯤 낭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 가만히 내려놓고 펴보는 날 있네 /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 그런 날 있네 / 그러면 내 스무 살 때 쥐어진 돌 하나 / 어디로든 굴러가지 못하고 /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 한 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 화상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 던지지 못한 그 돌 /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 //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 삶이 좀 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 나를 품어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네 //’ -나희덕 시 ‘뜨거운 돌’ 중에서
낭송 중 ‘만일 그 돌을 누군가에게 던졌다면’이라는 행이 생각나지 않아 난감했지만, 마무리하고 들어오는데 김웅 가이드의 울먹이는 소리를 들었다. 김 군이 울먹이는 바람에 버스 안 공기는 무거웠다.
김 군은 “태어나서 詩낭송이라는 것을 처음 들어봤다. 뜻은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라디오를 들었는데 그때 그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며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내용은 김 군이 어렸을 때 엄마가 돈 벌려고 일본으로 밀입국하다 홍콩에서 붙잡혀 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었고, 그때 할머니하고 형제들 대여섯 식구가 홑이불 하나로 덮고 살았는데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간들과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 순간 울컥했다는 이야기였다.
일행은 만약 시낭송 대회였다면 중간에 멈칫했으니 바로 불합격이었을 텐데 그래도 한 사람을 울렸으니 성공했다며 ‘위로’를 해주었다.
짧은 시간에 한편의 시(詩) 낭송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보는 순간이다. 김 군은 아마도 어느 시행에선가 마음속 깊숙이 박혀 있던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시인은 시를 쓰고 낭송하는 사람은 시를 이해하고 듣는 사람은 치유가 되는, 시로서 모두가 하나됨을 일깨운 소중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