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맛있는 한 끼를 책임지던 학교급식 노동자가 폐암으로 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지금까지 폐암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후 사망한 학교급식 종사자가 14명이나 된다고 한다. 산재가 발생하는 '위험한 일터'는 비단 건설공사장이나 공장만이 아니다. 가깝게 있는 학교 급식실에서도 땀 흘려 일한 결과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이 계속 벌어지는 게 우리 현실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발표와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경기도의 한 학교에서 급식조리사로 일해온 A(64)씨가 지난달 31일 폐암으로 숨졌다. A씨는 1998년부터 급식실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정년퇴직했지만 생계 문제 등으로 복귀해 대체인력으로 근무하다 2023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산재 인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해오던 A씨는 지난달 종아리 저림 증세로 병원을 찾았고 암세포가 뇌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돼 숨을 거뒀다.
지난 3월에는 경남지역 학교에서 20년 넘게 조리실무사로 근무하다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던 63세 여성이 숨지는 일이 있었다. 학교급식 노동자 가운데 폐암 사망 사례가 처음 알려진 게 2018년이다. 사망 당시 54세였던 노동자는 12년간 학교에서 조리 업무를 했고 폐암 판정 후 1년간 투병 끝에 숨졌다. 뒤늦게 2021년 2월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조리실무사로 근무하면서 폐암의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고온의 튀김, 볶음·구이 요리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에 낮지 않은 수준으로 노출됐다"며 산재 인정 이유를 밝혔다.
학교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원인으로 지목되는 조리흄은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농도 미세먼지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2010년 폐암의 위험 요인으로 분류했다. 조리 음식량이 많은 대형 급식 노동자들이 특히 조리흄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 4월 기준 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승인 건수는 175건에 달한다. 산재 신청 후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다.
학교급식 노동자의 폐암 산재가 인정된 이래 급식실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실제 개선 움직임은 더뎠고 그사이 폐암에 걸린 노동자들이 이어졌다. 급식노동자가 폐암에 걸리는 것은 "개인적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산재"라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조리종사자 산재에 각 시·도 교육청들은 안전지침 마련, 급식시설 현대화와 조리여건 개선, 조리원 1인당 급식인원 하향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산재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급식노동자 A씨 사망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는 많은 추모 댓글이 달렸다. 그중 하나를 옮겨본다. "살자고 일하는데 그 삶의 조건이 죽음을 끌어당기는 건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공동체가 불안정하단 거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공부 잘해서 의사 판사 검사가 될 순 없지만 노동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해 사는 근로자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비로소 공동체는 완성된다."
한때 '소년공'이었던 대통령이 나왔고 현장 노동자 출신이 노동부 장관이 됐다. 새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일터의 안전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이 산재가 잦은 생산공장을 직접 찾았고 노동부 장관은 산재를 줄이는데 "직을 걸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어려울 수 있다. 법과 제도를 넘어 사회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이제는 안전을 '당위'로 여겨야 한다. 그래야 일터에서 죽음을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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