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얼굴에 끈적끈적한 것이 확 씌워졌다. 거미줄이다. 그물에 든 물고기가 되어버렸다.
거미가 날 잡았다. 거미가 바쁘게 달아난다. 몸뚱이보다 검은 다리가 더 길다. 걸음은 거침없다.
나는 ‘주춤’ 뒤로 물러섰다. 얼굴에 끈적끈적한 것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줄이 얼굴에 엉겨 붙지 않아야 내가 산다. 다행이다. 볼이나 턱에 한두 줄기 남은 거미줄 말고는 더 이상 달라붙지 않았다. 도망친 거미는 보이지도 않는다. 나뭇잎 아래 숨어서 먹을 수 있나 엿보고 있겠지.
저녁 산책길이다. 율봉공원으로 건너가려고 모과나무와 모감주나무 사이를 지나다가 걸려든 것이다. 거미가 내 얼굴 높이로 그물을 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 느림보 노두(老蠹)가 지날 시간이라는 걸 다 예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키 높이까지 미리 계산하여 줄을 치면서 나를 잡아먹으려고 계획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달아났냐. 노두는 거미줄 쳐서 잡기에는 너무 큰 걸 몰랐더냐. 나나니벌이나 잠자리가 네게 맞는다. 여치나 방아깨비가 적당하다.
세상은 온통 거미줄 천지이다. 그야말로 그물처럼 얽혀 있는 거미줄이 나를 향해 있다. 여기저기 거미줄이 부비트랩booby trap처럼 도사리고 있다. 부비트랩은 건드려야 터지지만 나를 향한 거미줄은 그냥도 달려든다. 자칫 망신살로 뻗쳐올까 두렵다. 보이지도 않는 거미줄은 정도(正道)를 걷는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거미줄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생각하기도 전에 나타난다.
보이지도 않고 가늠할 수도 없는 거미줄이 마구 나를 노리며 도사리고 있다. 세상의 거미줄은 그냥 생긴 것도 있지만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 더 많다.
그런데 나를 향한 거미줄은 대개 나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뿌린 씨앗이 나무가 되고 거미가 되고 촘촘하게 줄을 쳐놓고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거미다. 내게 달려드는 거미줄은 내가 근원이다. 만약에 이유 없이 근원도 아닌 나를 향하는 거미줄이 있다면 결국 그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온 세상이 뒤죽박죽이다. 거미와 거미줄, 거미줄에 걸린 여치나 풀무치가 엉켜서 살아보려고 꿈틀꿈틀 용을 쓴다. 노랑 거미, 파랑 거미, 빨강 거미들이 달려들어 거미줄 차꼬와 거미줄 수갑으로 결박한다. 도망갈 재간이 없다.
가령 옛날 장공의 수레 앞에서 도끼 같은 팔뚝을 내보이며 거철(拒轍)의 자세를 취했다는 그 당랑(螳螂) 버마재비라 하더라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당랑이 도끼 팔뚝을 자랑하며 칠지도(七支刀)를 휘둘러도 치밀하게 준비한 거미는 겁내지 않는다. 버마재비를 겨냥한 거미는 보통 거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질기고 끈적끈적한 중앙 거미줄을 쳐놓고 버마재비를 몰아간다. 거미새끼들에게 곳곳에 거짓 거미줄을 치도록 지령을 내린다. 그리고 세모대가리에 부리부리한 눈깔을 돌리며 도끼팔뚝을 자랑하던 버마재비가 중앙거미줄에 딱 걸려들면 모든 거미새끼들이 한꺼번에 벌떼처럼 달려든다.
대물을 잡은 것이다. 가장 사악하고 야비하게 끈적거리는 거미줄 차꼬를 뱉어낸다. 수갑을 채우고 차꼬를 걸어 버마재비를 멍청하게 만들어 놓고 통통한 배때기에 빨대를 꽂는다. 도끼날 팔뚝도 칠지도 다리도 세모대가리도 사악과 야비 앞에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아찔하다. 모과나무와 모감주나무 사이에서 느림보 노두를 기다렸던 거미가 혹 야비하고 사악한 그 거미는 아니었을까. 뒤죽박죽 이 세상 한 발 내디디기가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