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내 고향 옥산 덕촌 마을 어귀에는 녹시래鹿柴來 고개가 있다.
매가 날개를 펼치고 마을을 품고 있다는 응봉산 정상을 조금 빗겨 난 등성이로 이어진 황톳길 녹시래는 그 마을 사람들의 나들목이며 관문이다.
진달래 꽃물로 둘레 산이 붉게 물드는 봄날이면 꽃 무덤 속에서 문둥이가 나타난다는 속설로 고개를 넘을 때마다 동심들의 오금을 저리게 했던 곳도 녹시래이다.
녹시래에서는 철철이 변모하는 풍경의 향연도 눈 호강이었지만 특별한 놀잇거리가 없던 유년시절 그곳은 또래들의 놀이터였다. 고갯마루에서는 사소한 어떤 것도 놀잇감이 됐고, 그곳에서 만나는 천둥벌거숭이들은 누구라도 친구가 됐다.
장날이면 우마차에 짐을 잔뜩 싣고 힘겹게 오르는 누렁이의 뒤를 폴짝폴짝 따라 함께 걷던 기억이 아슴아슴하다.
녹시래는 내 유년의 향수가 진득하게 묻어있는 곳이다.
언제부터 녹시래라 불리었는지 모르지만 녹시라는 뜻은 나뭇가지나 나무토막들을 사슴뿔 모양으로 얼기설기 엮어 쌓아놓고 적을 막던 장애물이라 한다.
그 옛날 정월 대보름날 밤이면 동네 남정네들과 코흘리개 조무래기들이 그곳에 모여 쥐불놀이를 하며 인근 마을을 향해 위세를 과시하기도 했었다. 마을 대부분이 혈연들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니 그 고개는 적의 범접을 막고 마을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성곽 같은 요새 역활을 했기에 녹시래라 이름하였나 보다.
어릴 적 등하굣길엔 반드시 넘나들어야만 했던 그 고갯길이 지금 생각해 봐도 어린 깜냥으론 꽤 가파르고 험준했던 것 같다. 눈보라가 혹독하게 몰아칠 때나 땡볕 무더위 속에서도 천둥벌거숭이 서너 명이 모여 녹시래를 넘을 때면 숨을 할딱이면서 왜 그리 뛰어서 올랐는지. 그러나 그 시절엔 녹시래를 넘나들며 고달프다 투정도 하지 않았고 쉬운 샛길을 찾는 요령을 피울 줄도 몰랐었다.
녹시래는 고향마을 사람들의 세월 안에서 애환으로 다져진 곳이기도 하다. 출정을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며 눈물을 훔쳐내던 곳이기도 하고, 금의환향하는 자식을 제일 먼저 맞이하던 곳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도 한 번쯤 다시 돌아와 고갯마루에서 마을을 지긋이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이 그 고개였다.
녹시래는 외부와 마을을 이어주는 단순한 통로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삶의 고뇌와 마을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지켜보며 세월 안에서 다져지고 다져져 덕촌 마을의 역사로 남겨진 고개다.
나는 여태껏 삶의 여정을 지나오며 가파른 고갯길을 몇 굽이나 넘어왔을까.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인생 여정에서 사시사철 꽃 피고 종달새만 청아하게 우짖었을까. 살을 에는 눈보라를 맞던 혹독한 날도 있었고, 훅 불어온 세파에 손에 쥐었던 것들을 허망하게 날려 보냈던 적들도 있지 않던가.
한 갑자의 세월을 보내고 찾은 내 고향 녹시래 고갯마루에서 유년의 나를 다시 바라본다. 푸닥진 다리로 신작로 먼짓길을 토닥토닥 걸어와 녹시래를 뛰어 넘어가던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나의 품에 폴짝 안겨온다. 이젠 녹시래를 급히 뛰어오르지 않아도 된다며 쉬엄쉬엄 정연하게 가라고 내 등을 토닥여 준다.
억겁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온 녹시래가 지금은 고개라 칭하기 무색할 만큼 뭉긋하니 낮아지고 또 넓어진 것처럼 나도 세월 안에서 겸손과 포용을 가슴에 넉넉히 담아 보리라.
내 고향 녹시래 고개에 다시 오르니 세월의 무게마저 바람결에 흩어져 푸른 산 빛 속으로 녹아든다. 그 품에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르며 황혼에 물들어가는 나의 길을 가만히 그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