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 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한글의 우수함에 대하여 외국인들은 부러워하고 경탄하고 있는데 오히려 한국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우리가 늘 공기와 접촉하며 살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듯이 우리는 한글을 늘 편리하게 사용하기에 고마움이나 우수함으로 모른다기보다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민족은 이렇게 훌륭한 문자를 창제했으면서도 한글이 한문에 억눌려 500여 년 동안이나 언문으로 천대받다가 일제에게 나라를 뺏기고 나서 일제가 우리 문자를 말살시키려 하면서 비로소 한글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존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야 공식적인 우리의 문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으니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글을 처음 보고 놀라서 외치는 말은 한결같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글은 왜 아름답게 느껴질까? 중국의 한자를 보면 상형(象形)의 방법으로 문자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지사(指事), 형성(形聲), 회의(會意), 전주(轉注), 가차(假借)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계속해서 만들어 가고 있으므로 이는 표음문자로 가는 중간 과정이 된다고 하겠으며 오늘날은 아예 소리만 표기하거나 아니면 영어 알파벳을 이용한 병음을 만들어 음만 표기하는 궁여지책을 쓰고 있으며 글자 쓰기의 기계화, 정보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볼 때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자의 형태를 보면 상형문자들은 사물의 모양을 간략화한 것이어서 체계가 없고 난잡한 구성일 수밖에 없다. 설형문자는 표음문자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쐐기의 모양과 같다 하여 설형문자라 부르게 되었으니 그 형태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었다,
인도 유럽어족의 문자나 아랍어 계통의 문자들도 오랜 세월 동안 민족에 따라 필요에 의해 다양하게 변화를 거치면서 체계화나 과학성,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글은 언어학의 바탕 위에 독창적으로 창제한 것이기에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인문학이자, 과학이자, 철학이자, 미학이며, 창조 과정에서 세밀하게 디자인한 미학적 산물인 것이다.
즉 한글의 기하학적 구성 요소는 많은 사람들이 20세기에 유행했던 모더니즘적 디자인과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감탄하고 있으며 세계인들이 한글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아름다운 손글씨라고 하는 캘리그라피가 생활 예술로 널리 선호하는 이유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할 수 있고, 누구나 아름다움에 감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의 미학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글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수단으로는 한자 서예를 본받아 발전해온 한글 서예도 있고 현대에 와서 발달한 캘리그라피도 있다. 한글 서예는 너무 틀에 얽매여 한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해 온 단점이 있어 이를 해결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하겠다. 캘리그라피는 비록 서양에서 시작된 방법이긴 하지만 한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더우기 훈민정음에서는 초성, 중성, 종성의 글자 체계가 지켜졌기에 서예로 표현하기가 유리하였지만 오늘날 종성이 없을 때 종성 자음이 생략되어 글자의 구성 비율이 맞지 않기에 글자 구성비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캘리그라피가 아름다운 한글을 표현하는데 오히려 큰 장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8세기 이후 근대에 와서 발달한 민속 전통을 계승하는 혁필(革筆)이 있다. 오늘날 혁필은 민화의 범주에 속하여 그림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서예에서 파생된 글자 쓰기의 예술인 것이다. 글자 쓰기를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서예(書藝)라 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글자 쓰기를 예술의 경지로 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서예와 회화를 넘나드는 혁필이 앞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의 국력 신장과 함께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하게 되었으며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처럼 자신들의 문자 체계로서 한글을 활용하는 민족들도 생겨나는 것을 보면 미래에는 우리 한글이 세계 공용 문자가 되는 날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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