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
운 좋게 박물관에서 일하며 몇 번인가 국외에 출장을 간 경험이 있다. 출장을 간다는 것은 정확히 일을 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행을 가는 것과는 다른 준비를 하고,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바이킹 전시를 하기 위해 덴마크 국립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오직 바이킹만 담겨 있었다. 바이킹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양쪽에 뿔이 달린 투구 아니던가? 그런데 전시 담당 덴마크 큐레이터는 그것이 바이킹에 대한 가장 큰 오해라고 했다. 바이킹은 그런 투구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고. 이럴 수가! 그래도 역사를 공부한 내가 바이킹에 대해 이렇게도 몰랐던가?
한탄을 하던 그 즈음 더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덴마크 국립박물관 큐레이터가 나에게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물었고, 나는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덴마크 국립박물관에 정말 유명한 고고학자가 있는데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덴마크 고고학자? 누구지? 머릿속에 바이킹만 가득 담아온 터라 덴마크 고고학자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혹시 톰센이라고 알아?”라고 물었을 때,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런! 명색이 고고학자라고 하면서도 석기–청동기–철기시대를 구분한 톰센이 덴마크 국립박물관 출신이라는 것을 기억조차 못했다니! 어떤 고고학 개설서를 보더라도 톰센의 삼시기법은 빠지지 않는 내용인데, 나는 그것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은 다른 지역보다 기록이 늦게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긴 선사시대를 가지고 있고, 박물관에서 전시를 하던 톰센은 유물들이 석기–청동기–철기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이를 근거로 전시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순으로 구성한 것이다. 그의 발견은 결국 전 세계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적 변화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반적으로 선사시대는 석기시대(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철기로 나누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삼시기법과 다른 선사시대 구분 방식을 사용하는 곳이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의 선사시대는 선토기(先土器)시대–조몬(繩文)시대–야요이(弥生)시대–고훈(古墳)시대의 순서로 발전한다. 고훈시대는 우리의 삼국시대에 해당하며, 야요이시대는 우리의 청동기시대와 삼한시대를 합친 정도에 해당한다. 조몬시대는 신석기시대, 선토기시대는 토기가 나오기 전의 시대, 즉 구석기시대를 뜻한다. 일본의 시기 구분은 사용되는 도구의 재질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그릇으로 시대를 나눈 것이다. 그릇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토기가 출현하기 이전의 시대라는 의미의 선토기시대가 있었고, 이후 조몬토기, 야요이토기, 고훈토기로 발전해 나가는 그릇의 역사가 시대명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런 토기 중에서도 일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바로 조몬토기다. ‘조몬’이라는 말은 토기의 표면에 새끼줄로 무늬를 새겼다는 의미다. 조몬토기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특히 후지산 인근 야마나시의 것은 그 화려함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화염문토기라고도 불리는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형태의 이 토기들은 흙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특이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토기들이 후지산 주변에서 주로 만들어져 사용되었을까? 잘 알다시피 후지산은 화산이다. 그리고 후지산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지금도 지진과 화산 폭발이 자주 일어나는 일본에서 후지산이 폭발하면 엄청난 재해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과거 조몬인들은 후지산이 폭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화산의 불꽃을 형상화한 조몬토기를 만든 것이 아닐까?
야마나시에서 발굴된 조몬토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거기에는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인물상을 비롯해 멧돼지, 뱀, 도롱뇽, 부엉이 등 다양한 동물과 함께 소용돌이, 사선 등 화려한 기하학 무늬가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토기에 표현된 이러한 인물과 동물을 비롯한 다양한 무늬는 사람들의 바람과 의지를 담은 메시지였다. 예를 들어 멧돼지는 힘뿐만 아니라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아 다산과 풍요를 상징했고, 뱀은 허물을 벗으며 영생을 뜻했다. 도롱뇽은 위험하면 꼬리를 끊고 도망가는데, 다시 꼬리가 자라나 재생을 의미했다. 부엉이는 닥치는 대로 먹이를 사냥해 항상 먹을 것을 비축해 두었는데, 이는 조몬인들에게 큰 의미가 되었던 것 같다.
9월 4일부터 국립청주박물관에서는 특별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山梨’가 시작됐다. 첫 번째 전시 공간에는 후지산 주변에 살던 조몬 사람들이 만든 화려한 토기와 흙 인형이 전시되어 있다. 대부분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총 13점의 지정문화재가 집중 전시됐다.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많은 조몬토기가 전시된 것은 처음이며, 일본의 여느 박물관보다 더 많은 중요문화재를 전시하는 곳이 바로 국립청주박물관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화려한 조몬토기를 제외하면 그림 자료가 많아 2주마다 전시품을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2주마다 새로운 전시를 볼 수 있으니, 잊지 말고 일본 문화의 정수를 꾸준히 감상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