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탕 설계 보존한 채 카페·음식점 자구책에도 유지 버거워
“시민 추억의 공간이자 건축사적 가치 인정...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돼야”
청주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옛 학천탕 건물이 경영난으로 수리·보수를 못해 흉물스럽게 변해가고 있다.
학천탕은 1988년 준공됐다. 때밀이 종업원 소년에서 목욕업계 대부로 자수성가한 고 박학래(1923~2010) 전 청주시(2대·3대)·충북도(5대·6대) 의원이 아내 채천식(95) 여사에게 환갑기념으로 선물한 건물이다.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서울대 예술관, 국립청주박물관, 세운상가 등을 설계한 당대 최고의 김수근(1931~1986) 건축가의 설계작품으로 알려진다.
개업 당시만 해도 ‘대중탕답지 않은’ 미려한 건축미와 연면적 2100㎡ 지하 1층, 지상 8층 높이의 위용을 뽐내는 청주의 랜드마크였다. 지하는 학천 화랑, 1~2층은 남탕, 3~4층은 여탕, 5~8층은 사우나실로 활용됐다.
37년이 지난 지금 건물 외벽에 ‘학천탕’이라는 간판은 남아있으나 상호는 ‘학천불고기’로 바뀌었다. 창업주인 박 옹의 정계진출로 가산이 바닥난 채 가업을 이어받은 장남 박노석(66) 대표가 1~4층을 카페와 음식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본래 설계의 대중탕 디자인은 그대로 살리고 빈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만 들였다. 어떻게든 유지·보존하겠다는 자구책이었지만 경기침체로 그마저도 어렵다. 외벽 페인트는 너덜너덜하고 갈라지고 부식돼 추레한 모습이 도시미관까지 해치고 있다.
시는 2023년부터 근현대 청주를 배경으로 다수의 시민이 체험하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건, 장소, 인물 또는 이야기가 담긴 유·무형 유산을 발굴해 ‘청주 미래유산’으로 선정하고 있다. 시민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함께 보호하기 위한 취지다.
현재 청주시 미래유산은 모두 39곳으로 △문화제조창·동부창고 △옛 청주소방서 망루 △학천탕 △국립청주박물관 △소전리 가옥 △청주제일교회 △충북대 역사관 △천주교 수동성당 △천주교 내덕동 성당 △덕성이용원 △옛 청주시장 관사 △중앙동 헌책방 △대신정기화물자동차(주) △중앙공원 △서문대교 △성안길 △덕촌리마을 △삼일공원 △수암골 △미동산수목원 △육거리시장 △옛 청주역 일원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청주 삼겹살 △내수동 고개(시계탑) △무심천 벚꽃길 △청주 해장국 △운보의 집 등이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올해 △청남교(꽃다리) △청주 짜글이 △장암동 연꽃방죽 △원불교 청주교당 △남주동 가구점 골목 △작천보 △까치내 △솔밭공원 △명암저수지 △우암산 둘레길 △초정약수 △송절동 백로서식지 등 11곳이 추가 선정됐고 현재 내년도 미래유산 시민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있다.
선정된 미래유산 대부분은 공공 공간이나 관공서급 공관으로, 도시재생사업이나 축제 형식을 빌어 시의 보수·개선·활용 사업의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사유물인 ‘학천탕’ 건물에 관한 한, 얘기가 다르다.
미래유산 지정 첫 해, 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는 학천탕 선정 사유로 ‘상업건물임에도 조형미와 예술미를 살린 건축물이자 80년대 당시 목욕탕 전용 건물로서 최대규모’인 점을 꼽았다. 시민들의 추억과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자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청주시 관계자는 “미래유산은 그냥 형식적으로 표식(현판)만 부착해주면 될 뿐 개별적인 지원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2021년 변은영 청주시의원 등의 발의로 제정된 ‘청주시 미래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안’ 14조(보존관리)·15조(청주 미래유산 보존·관리의 위탁)에 의하면 ‘시장은 미래유산의 보존·관리를 위해 매수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토지 및 지장물에 대해 매수·보존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법인·단체 또는 그 기관이나 개인에게 위탁해 보존·관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변 의원은 “조례안이 발효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발전은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며 “형식적인 지정 말고 학천탕처럼 보존할 가치가 있는 미래유산은 사유물이라 할지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을 갖고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고 밝혔다.
원세용(청주대 건축공학과 교수) 충북건축가협회 회장은 “'학천탕 보존'에 관한 한 건축계는 물론 많은 시민에게 이미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고 본다”며 "지원을 위한 절차상의 명분을 보완할만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노석 대표는 “학천탕 건물은 몇 년 전 심각한 경영난으로 경매에 부쳐진 것을 부친의 유지와 건축물의 가치 등을 고려해 어떻게 해서든 보전해 보려고 빚을 내 다시 인수했다. 현재는 그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화실로 운영되던 지하공간을 예술공간으로 임대할 방안을 문화재단에 문의한 적이 있다. 건물 전체는 어렵지만 일부공간은 공공 전시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기본적인 수익이라도 생겨 보존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토로했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