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조지아의 한국계 배터리 공장에 무장력이 난입하여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쇠사슬에 묶인 채 연행된 사건은 충격적이다. 물론 미국의 이민법과 노동법 집행이 배경이라 하더라도, 투자 유치 국가의 정주 환경을 보장하고 투자자의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신뢰가 필요하다. 현지 법 집행 기관의 과도한 물리력 사용은 무엇보다도 동맹국 국민의 정서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는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동맹과 투자 파트너십의 근간을 흔드는 불신의 씨앗이 된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단순히 불법체류 단속 차원을 넘어선 상징적 의미가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배터리 생산 기지를 운영하는 한국 기업을 겨냥한 무력행위라는 점에서, 이는 한국 경제력과 기술력을 향한 노골적인 경고 메시지처럼 읽힐 수 있다. 이런 식의 압박은 투자 확대를 독려했던 미국 정부의 태도와도 모순되며, 기업은 물론 한국 사회 전반에 미국이라는 파트너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편 한국 특검이 한학자 총재를 소환 조사하자,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내 인사들이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종교적, 정치적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이는 명백히 한국 사법 주권에 대한 간섭이다.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내부 문제는 내부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지켜왔으며, 그 과정에 외국의 정치 지도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폼페이오 전 장관의 이러한 내정간섭은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3시간 전에 트루스소셜에 올린 ‘숙청’과 ‘혁명’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즉 폼페이오 개인의 생각이 아니란 이야기다. 미국은 자유와 법치의 가치를 강조하며 세계 각국에 존엄과 자율성을 존중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사법 절차에 간섭한다면, 이는 스스로의 원칙을 저버리는 자기 모순적 태도라 할 것이다. 동맹국이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불문율이 무너질 경우, 한미동맹은 신뢰와 존중이라는 기초를 잃게 된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은 한미동맹을 지탱해온 신뢰의 균열을 의미한다. 최근 미국 비자 발급 축소와 이민 규제 강화로 인해 한국 청년들이 유학이나 취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은, 더 이상 미국이 상징해온 ‘기회의 나라’ 이미지가 유지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의 포용력이 약화되고, 국내 정치 논리에 따라 동맹 정책마저 휘둘리게 된다면, 한국은 이전과는 다른 냉혹한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한미동맹을 공동 가치나 상호 신뢰가 아닌, 금전적 이익의 거래 대상으로만 여기는 듯하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미군 무기 구매 압력은 한국 안보조차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는 동맹의 본질을 경제적 거래로 축소하는 단견이며, 한미 간 신뢰를 약화시키는 중대한 착오다. 우리는 중국만이 아니라 미국의 압력에도 동시에 직면하는 구조적 현실로 들어서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더욱 날카로워질수록, 한국은 두 강대국의 요구 사이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 방관하거나 눈치를 보는 것만으로는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자강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 외교에서의 자율성 강화, 안보에서의 실질적 대비, 그리고 경제에서의 독자적 생존 능력이 필수적이다. 동맹은 필요하지만, 맹목적 의존은 위험하다. 한미동맹은 존중과 신뢰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으며, 이를 지키려면 한국 또한 굳건한 자강의 토대를 세워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돌아볼 시점이다. 강대국 정치의 거친 파도 속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우리 자신이다. 동맹의 가치는 중요하지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동맹은 평등한 협력이 아닌 불평등한 종속으로 전락할 수 있다.
오늘의 사건은 경고다. 미국을 향한 맹목적 신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국은 이제 진정한 독립적 판단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세계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