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 교수

▲ 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 교수

최근 일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신종 금융 사기 소식은 우리 사회에 깊은 불안감을 던져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유출되고, 좀비폰과 알뜰폰 명의도용을 이용한 금융 사기 사건들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편리함의 최전선에 서 있는 디지털 기기와 금융 서비스가 오히려 우리 삶을 위협하는 ‘안전의 역설’에 직면한 것이다.
어떤 디지털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든 우리는 정보제공의 동의를 마지못해 하게 되고, 이러한 암묵적인 동의를 통해 위험을 감수하고 산다. 스마트폰으로 금융 거래를 하고, 앱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편리함에 취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책임은 상당 부분 개인의 부주의로 치부되며, 금융기관은 '면책'의 방패 뒤에 숨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 인식과 함께, 디지털 문명 시대의 불안을 해소할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 우선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은 '데이터 소유권'의 개념이다. 개인정보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과 직결된 '데이터'다. 기존의 개인정보보호법이 정보의 '활용'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데이터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고,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열람, 수정, 삭제,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규제를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주권을 확립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기반 분산 신원인증 시스템(DID, Decentralized Identifier)'의 전면적인 도입이 시급하다. 현재의 중앙집중식 인증 체계는 단 한 번의 해킹으로 수많은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DID는 개인정보를 중앙 서버에 보관하지 않고, 분산된 형태로 개인의 단말기에 저장해 정보 유출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이미 모바일 운전면허증 등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도입이 시작되었지만, 이를 금융, 의료, 상업 등 모든 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물론 DID 기술에도 개인 키 관리의 어려움, 기술 표준화 미비 등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난관은 과감한 투자와 제도적 지원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DID를 통해 위조된 신분증으로 인한 명의 도용과 같은 범죄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으며, 이는 금융 사기 예방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적 대안만으로는 충분하지는 않다. 금융기관의 '책임 강화'와 '사전 방지책'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의 비대면 금융 거래는 편리함을 명분으로 고위험 거래에 대한 인증 절차를 지나치게 간소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금융기관은 더 이상 사고 발생 후 '소비자 과실'을 운운하며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비정상적인 이상 금융거래 탐지 시스템(FDS)을 고도화하고, 거액 인출이나 신규 대출 등 고위험 거래에 대해서는 대면 거래에 준하는 엄격한 본인 확인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비대면 금융 거래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금융기관이 선제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분담하는 법적 제도를 강화하여 금융기관이 예방에 더욱 힘쓰도록 유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의 '디지털 리터러시' 함양이 절실하다. 우리는 편리함의 대가로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스미싱과 피싱의 최신 유형을 파악하고, 보안 앱을 설치하며,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변경하는 등 개인의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정부와 교육기관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실용적인 디지털 위생 교육을 의무화하고, 개인이 디지털 환경의 위험을 스스로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디지털 문명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우리는 이 흐름 속에서 편리함을 누리는 동시에,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인 '안전'과 '정보 주권'을 지켜야 할 때이다. 기술적 진보, 제도적 개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인식 변화가 한데 어우러질 때, 비로소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불안을 극복하고 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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