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순 동화작가
정관 김복진(1901~1940) 선생님은 한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이며 서구 조각기법을 한국적 조형 언어로 재해석한 분이다. 그의 대표작은 '백화'와 '소년'이다.
나는 그동안 김복진 선생님에 관해서는 미술 시간에 배운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몇 년 전, 1988년도에 뒷목문학회 회원들이 정창훈 조각가와 함께 팔봉산에서 수풀 속에 묻혀있던 선생님의 무덤을 찾았고, 무덤 위에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우리의 역사에 기록될 만큼 훌륭한 분인데도, 후손들은 그를 잊고 살았던 거다. 그래도 뒷목문학회 회원들이 김복진 선생님을 연구하고 조명하면서 서울에 있는 조각가와 미술가들도 선생님의 묘소를 찾게 되었고, 묘소에 제대로 된 비석을 세웠으며 그분을 기리는 행사도 매년 열고 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 김복진 선생님이 태어나신 충북 청주시 남이면 팔봉리에서 지난 5월 17일부터 25일까지 9일간 ‘제1회 2025 김복진 조각 페스타’를 연다는 소식이 들렸다. 선생님의 무덤을 팔봉리 산속에서 찾은 지 37년 만에 들려온 소식이었다. 행사는 팔봉리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잊혀 가는 천재 조각가의 삶과 작품을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내자는 뜻으로 만든 자리라고 했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팔봉리로 가는 동안, 나는 약간의 설렘과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손도 남겨두지 못하고 40세 나이로 요절한 천재 조각가를 향한 애틋함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 그랬던 것 같다.
‘김복진 조각 페스타’는 선생님의 생가를 중심으로 40여 명의 조각가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였다. 작품들은 팔봉리 마을 15개 농산물 건조장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건조장의 사각의 틀과 다양한 선을 가진 조각 작품의 어우러짐은 특별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더구나 김복진 선생님의 세상 나들이를 응원하기 위해 먼 곳에서 온 후배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선생님을 향한 존경과 추모의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시선을 끈 작품은 정창훈 작가가 복원한 법주사 미륵대불이었다. 미륵대불은 정관 김복진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인데, 완공을 두 달 앞두고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셔서 1964년에 후배들이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7년쯤에 자연훼손이 심하다는 이유로 해체되었다니 참 안타깝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니, 속리산 법주사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그 미륵대불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미륵대불의 빼어난 아름다움만 보았지 김복진 선생님이 남기신 마지막 작품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시멘트로 만든 법주사 미륵대불의 실물을 기억하는 몇몇 사람 중에 나도 한 사람인 거다.
사람들은 김복진 선생님을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조각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예술가이면서도 독립운동가였기에 1993년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녹록지 못하여, 그의 천재성을 마음껏 펼쳐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가 남긴 50점 남짓한 작품 가운데 청동으로 된 초상 조각들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모두 전쟁터로 공출되었고 목조와 소조의 유작도 육이오 전쟁 때 모두 불타버렸다니 참으로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불상 2점뿐이다.
지금, 충북 청주시 남이면 팔봉리에는 ‘정관 김복진’ 선생님의 뜻을 기리고 그의 발자취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부디 그분들의 열정이 헛되지 않길 바라며, 팔봉리가 한국 조각의 발상지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