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변호사
오늘은 오후 2시부터 청주 상당경찰서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는 날이다. 경찰서 종합민원실에 도착해 미리 오셔서 기다리시는 상담자가 있을까 살폈으나 아직까지 상담자는 없었다. 경찰서에서는 미리 상담 예약을 받지 않고 상담일에 누구나 오시는 대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다른 상담자를 위해서 상담 시간은 30분이라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
똑! 똑! 누군가 상담실 유리문을 가볍게 노크하고 천천히 열었다. 오늘 처음으로 오신 상담자였다. “여기에 오면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라고 말끝을 흐리시며 나의 반응을 살펴보신다. 나는 의자에 앉으시라고 권하고 어떤 일로 오셨는지 물었다. 상담자는 임차주택에 살고 있는데 임대인이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임의로 주택의 마당에 차를 세워두거나 허락도 없이 마당을 통과해 지나가는 등의 행위로 임대인과 갈등이 있었고 너무나 힘들어서 상담을 구하였다. 임대인의 행위는 상담자의 주거를 무단으로 침입한 것이어서 형법상 주거침입에 해당될 수 있고, 상담자는 형사 고소와 더불어 임대차계약 해지 및 손해배상청구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상담자는 임대인에게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기회를 마지막으로 주고 싶다고 하였고, 나는 내용증명을 작성해서 보내실 것을 제안했다. 내용증명은 법적인 의사표시를 전하는 일종의 편지이다. 나는 상담자에게 주거침입의 발생 사실과 관련 증거가 확보된 사실을 언급하시고, 이에 대하여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문구와 만약 이를 어길 경우 형사 고소 및 임대차계약 해지와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정중하고 부드럽게 표현해 보내시도록 조언해 드렸다.
똑! 밖에서 기다리던 상담자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문을 열었다. 내 앞의 상담자는 다 끝났다고 나 대신 대답하면서 감사 인사를 하고 퇴장하였고 그와 동시에 밖에서 기다리던 상담자가 바통을 이어받아 입장하였다. 두 번째 상담자는 예의상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 뒤 배우자에 대해 악의적인 소문을 낸 사람에 대해서 고소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물어보셨다. 소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한 뒤 가해자가 이런 소문을 주변에 퍼뜨린 게 맞다면 허위사실 적실에 의한 명예훼손에 해당된다고 설명하고 가지고 온 증거를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고소장을 작성한다면 ‘가해자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사실을 말하였다, 가해자가 한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다, 가해자로부터 그 말을 직접 들었던 제3자가 피해자에게 알려주었고 당시 주변에 여러 사람이 같이 들었다’는 내용을 추가로 보완해서 고소장을 접수하시도록 안내하였다. 상담자는 생각보다 쉽다고 느꼈는지 만족감을 표하며 상담실을 나갔다.
이후에도 연달아 몇 건의 상담을 마치고 한 10분 정도 휴식시간을 갖던 중 그날 마지막 상담자가 문을 두드렸다. 상담자는 무표정한 얼굴에 많이 피곤해 보였고 의자에 앉자마자 자신이 사기 당한 사건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약 15분 정도 흘렀으나 아직 본론에 이르지 못한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정중히 말을 끊으면서 “저에게 원하시는 게 무언가요?”라고 물었고, 상담자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요”라고 말했다. 상담자는 1억 원이 넘는 돈을 사기당한 뒤 며칠째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상담자는 사기꾼보다 자신을 더 책망하느라 잠을 못 잤을 것이다. 상담자가 작성해 온 고소장은 가해자를 어떻게 알게 되었고, 그에게 돈을 빌려준 경위 등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대로 고소장을 접수하시고 이와 별도로 지급명령신청이나 배상명령신청 그리고 가해자의 예금이나 부동산 등 재산에 대한 가압류도 신청하시도록 안내해 드렸다. 상담자는 처음보다는 밝아진 얼굴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리가 된 것 같다고 하셨고, 나는 “사기 친 사람이 나쁜 사람이지 상담자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냥 그 말이 나왔다. 어쩌면 내가 그분께 해드린 상담 내용 중에 그 짧은 한 문장이 가장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부디 상담자가 돈도 마음도 회복되길 바라며 상담실을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