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주)청강 대표·서원대 융복합대학 교수
한여름 땡볕 아래, 상가 주차장을 몇 바퀴나 돌다 어렵게 빈자리를 찾았다. 조심스럽게 차를 세우려는 순간, 그 자리엔 덩그러니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음료를 마신 뒤, 쓰레기통을 찾는 수고 대신 주차선 한가운데 조용히 내려놓고 떠난 것이다.
차는 아끼면서도, 함께 쓰는 도시 공간은 쉽게 소홀히 다루는 모습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작은 무심함 하나가 도시를 ‘버린’ 순간이 되고, 그 공간은 곧 '버려진' 도시의 신호가 된다.
오늘날의 도시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버리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단지 쓰레기만이 아니다. 양심, 책임감, 공동체 의식, 기초 질서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도시의 물리적 공간의 쇠퇴로 이어진다.
상가 앞에 '쓰레기 투기 금지' 문구는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처음에는 담배꽁초 하나, 작은 봉지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은 금세 더 큰 무질서를 불러온다. 쓰레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곳은 금세 버려진 공간이 된다.
사회학자 제임스 Q. 윌슨(James Q. Wilson)과 조지 L. 켈링(George L. Kelling)이 제안한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은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설명한다. 깨진 유리창, 낙서, 무단 주차 등 사소한 무질서가 방치되면, 시민들은 해당 공간의 질서에 대한 기대와 경계심을 잃고 점점 더 큰 혼란과 범죄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은 질서가 무너지면 큰 질서도 쉽게 무너진다.
전기차 충전 구역은 충전이 아닌 주차 용도로 오용되기 일쑤고, 충전기를 꽂아 놓은 채 장시간 자리를 점유하는 이기적인 모습도 낯설지 않다. 도로 위의 퍼스널 모빌리티(PM) 이용자 중에는 헬멧 없이 여럿이 매달려 달리는 위험한 장면이 반복되고, 불법 주정차 차량은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보행자와의 충돌 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화된 무질서는 결국 도시 전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구조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반대의 모습도 존재한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 좁고 낡은 환경임에도 차량들이 질서정연하게 전면 주차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모두가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고 서로를 배려한 결과였다. 외관은 허름했지만 공동체 의식은 살아 있었으며, 아파트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는 스스로 유지되지 않는다. 누군가 대신 지켜줄 수도 없다. 결국 도시의 품격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태도와 실천에 달려 있다. 싱가포르는 엄격한 규범을 생활화 하며 깨끗한 도시를 만들었고, 미국 시카고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실천하며 범죄율을 낮췄다. 작은 질서를 지키는 습관, 그것이 도시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지금도 도시 한복판에서 무언가를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도시를 버리면, 결국 도시도 우리를 버릴 것이다. 도시를 살리는 길은 거창한 사업이 아니라, 일상의 양심과 질서를 지키는 작고 꾸준한 실천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