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만 복무하면 제대하는 군 생활이 있었다. 단기사병(방위병)도 아닌, 장교가 그랬다. 일명 ‘석사장교’ 제도다. 더 놀라운 일은 명색이 육군 대장 출신인 전두환 노태우가 자기 아들들에게 행한 일이라는 점이다. 전재국과 노재헌 얘기다.
그 제도는 전재국의 입대를 앞둔 1982년에 도입되고 노재헌이 제대할 때인 1991년에 없어졌다. 당사자 둘과 다른 특권층에게 시혜를 준 후 총알같이 사라져 일반 국민들의 혜택을 차단한 것이다. '대통령 아들용' '있는 집 자식용'이라는 딱지가 붙은, 실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시절의 '전설' 같은 팩트다.
요즘 노블레스 오블리주 얘기가 많이 회자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씨가 해군 장교로 입대해서 온 국민들이 '신선하다'는 반응을 내놓는 중이다.
선천적 미국 복수국적자로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데도 시민권까지 포기했다니 놀라움을 준다.
이전에도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둘째 딸 최민정씨가 해군 장교로 입대해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해병대 수색대에 자원 입대한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의 장남 최성환 씨, 미국 시민권을 버리고 육군에 입대한 코오롱그룹 이규호 부회장 등 다른 재벌가 자녀들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군대 안가려고 팬들에게 한 약속까지 깨고 미국으로 달아난 가수 스티브 유가 많이 배우고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굳이 따지고 보면 이런 일들은 '뉴스거리'가 돼서도 안되는 일이다. 남자가 군대 가고, 그 대상이 대통령 아들이든 재벌가 상속자이든 다같이 이행해야 하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여서 그렇다.
하지만 석사장교 제도에서 보듯 누군가의 '장난질'에 국민들이 열받고 분통 터지는 세상이다 보니 이재용 회장의 아들 일이 신선하게 다가오고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 부인할수 없다.
6.25 한국전때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례가 있었다.
당시 참전중이던 미 8군 제임스 밴플리트 사령관의 아들 제임스 주니어는 B-26 폭격기를 몰고 평양 폭격에 나섰다가 실종됐다. 밴플리트는 부하들이 시신 수색대 출동을 건의했는데도 더 급한 일이 있어서 안된다며 거부했다.
우리 국민들이 이재용 회장 아들의 사례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사회 지도층이 그래도 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 군 복무를 면제 받는다면, 그것이 실제 그럴수 밖에 없는 경우라 해도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이다. 그게 우리의 정서다.
과거를 되돌아 봐도 우리 사회에서는 6.25 한국전과 베트남전 당시 유력 정치인과 재벌, 또 그들의 자제가 전장에 나가 싸운 사례를 찾기 어렵다. 대신 권력을 앞세워 병역 면제와 특혜를 받는 게 관행으로 작동해왔다.
이지호씨의 자진 입대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이 되길 기대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같을 것이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아주 거창한 구호도 더욱 아니다. 그저 내게 주어진 본분, 내 기본 의무, 당연히 지켜야 할 사회적 도리를 회피하지 않고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가진 자, 특권층'일수록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그게 건강한 사회다. 이재용 회장 아들 이지호씨의 선택이 한국 사회에 두고두고 큰 울림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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