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규 서천문화원장
우리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우리는 자아실현의 욕구에 앞서 본능의 욕구를 어떻게 절제하고 이를 자신의 자아와 인격으로 승화시켜야 할까 하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실천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성욕, 식욕, 안락욕은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 가지는 본능이다. 헌데 우리 인간만이 탐닉하는 식욕과 성욕의 절제를 가장 추구해야 할 때가 지금 아닌가 한다.
이미 식욕으로 문제가 되는 비만은 이제 질병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오직 인간만이 절제돼야 하는 제동장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돼지들이 과식해서 배탈났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소를 본 적도 없고, 너무 일을 많이 해 과로로 쓰러지는 개미를 본 적도 없다. 먹는 것, 일하는 것, 말하는 것이든 절제하지 못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지킬 자격이 있느냐 하는 절제의 시험을 치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절제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내린 최초의 계명이다. 그것만 지키면 에덴동산에서 영원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이었는데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어기고 말았다.
우리의 세끼 식사는 지나친 식탐이 불러온 과정이지 이걸 꼭 지켜야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린 무의식적으로 열두시가 되면 점심을 무얼 먹을까 걱정하고 저녁 여섯시가 되면 저녁 먹을 걱정을 한다.
오히려 한끼를 쉬어야 몸에 좋은데도 저녁 늦게 술이며 안주를 먹는다.
마치 먹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 HD화면으로 제공되는 요즘 방송을 보면 그야말로 먹거리 프로로 넘쳐 난다. 어느 방송을 보도 먹거리가 빠지지 않는데 특히 저녁 시간에 집중적이다. 저녁밥을 먹을 때쯤 방송되는 먹거리 프로를 보면 식욕을 자극한다. 선명한 화질의 TV로 보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먹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한다. 만일 냄새까지 나는 TV가 개발된다면 그 강도는 더할 것이다.
이제 개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건강한 그리고 절제되는 식사가 절대 필요하다.
일본의 관상가 미즈노 남부크의 절제란 책을 보면 그는 절제하지 못한 사람의 관상을 보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특히 음식의 절제를 말했다 이 책은 절제에 대해 깨닫고 성공과 장수를 할 수 있는 비결이 담겨있다. 절제는 비단 음식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권력이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음은 절제와 결코 무관하지가 않다.
권력의 진정한 의미는 그 권력을 어떻게 ‘절제’하는가에 달려 있다. 절제되지 않은 권력은 언제든지 독단과 폭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렇기에 권력의 절제는 민주사회의 핵심 원칙이며 정치인뿐만 아니라 리더의 필수적인 소양이다.
요즘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법대로”이다. 물론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정치란 본래 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안과 갈등을 다루는 영역이다. 법을 입법부인 정치인들이 만들지 않는가. 그런 정치인들이 정치적 문제들을 법의 틀 안에서만 해결하려 들며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스스로 정치인이기를 거부하는 행위며 그들을 선출한 국민들에 대한 배신행위다. 법은 기준이 될 수 있으나, 공동체의 삶을 이끌어가는데 있어서는 인간적인 상식과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절제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자기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고민하는 자세다. 이는 정치인뿐 아니라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적용돼야 할 원칙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제도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절제하고 의견을 절충하며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발전해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절제되지 않는 것이 부의 축적과 그 부의 씀씀이다. 지금 우리 주변을 보면 모두 돈과 부를 추종한다. 경계하고 절제하고 나눠야 한다. 많이 가지려고만 하지 말고 인간이 가장 중요한 도덕적인 모습을 지켜야한다.
첫째,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오해다. 실제로는 많이 가질수록 더 불안해지고, 더 많이 빼앗길까 두려워야한다. 둘째, “부는 경쟁에서 이겨야 얻는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고전은 부를 “공유할 때 더 커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셋째, “부는 나만을 위한 것”이라는 착각이다. 진짜 부는 나를 위해 쓰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돈이 많음에도 불행한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갈망하며,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불안에 떨고, 타인과의 관계마저 무너뜨린다. 이는 고전이 경계하는 부의 그림자다. 고전에서는 이런 사례를 들어, “부를 잘못 이해하면 삶은 풍요로워지기는커녕 오히려 공허해진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적은 돈을 가지고도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작은 나눔의 기쁨, 일상의 감사에서 부를 느낀다. 이것이야말로 고전이 말한 마땅히 가져야 할 부의 실천적인 모습 아닐까.

